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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독서정리

서른 번째 책 : 마크툽 - 파울로 코엘료

by 마파람94 2021. 7. 29.

 

휴가가 가로 놓여 있었던 7월의 막바지인 7월 29일입니다. 지난번 휴가 중 칼의 노래는 400여년 전 이순신으로 빙의한 소설이었다면, 이번에 읽은 마크툽은 현자의 수첩에 적힌 글귀들을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칼의 노래가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면, 이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별 빛 가득한 밤하늘을 본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이번 책으로 파올로 코엘료의 책을 세 권째 읽는데 역시 '연금술사'가 원탑이라는 느낌입니다. 

 

이 책의 제목인 마크툽은 아랍어로 기록되어졌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마크툽 책 중에 저의 마음에 마크툽인 주요 밑 줄들과 이미지를 옮겨와 보겠습니다. 

 

새겨진 이미지들

 

 

p. 51

고대 로마의 무녀 한 무리가 로마의 미래를 담은 책 아홉 권을 펴냈다. 그리고 그 책들을 가지고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가서 사라고 했다.

황제가 물었다.

"책값이 얼마냐?"
"금화 백 닢입니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비싼 값에 화가 나서 무녀들을 쫓아버렸다.

무녀들은 책 세 권을 불태운 뒤, 다시 황제에게 가서 말했다.

"이 책들을 사십시오. 값은 여전히 금화 백 닢입니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웃으면서 그 제안을 물리쳤다. 책 아홉 권 값을 내고 여섯 권을 살 이유가 뭐란 말인가? 무녀들은 다시 세 권을 불태우고 남은 세 권을 가지고 또 황제를 찾아갔다.

"책값은 여전히 금화 백 닢입니다."

 

호기심이 동한 티베리우스 황제는 결국 책을 샀다. 그러나 그 책들 속에서 제국의 미래에 대한 내용은 찾아내지 못했다.

스승이 말했다.

"눈앞에 기회가 나타났을 때 지나치게 재지 마라. 그것이 삶의 기술 중 하나다."



 

 

p. 59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너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소식을 전하겠다. 너희가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한 기분을 덜 느끼도록 완화해서 말하고 싶기도 하다. 밝은 색을 칠하고, 천국의 약속과 절대에 대한 비전 비의적인 설명으로 장식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아무래도 나는 직설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구나. 내가 하려는 말의 진실성은 보장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하려는 말에 전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 그것은 확실한 예측이고, 거기에는 그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다.

이제 그 소식을 말하겠다. 너희는 죽을 것이다. 내일, 또는 50년 뒤에 언젠가 너희는 죽을 것이다. 너희가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너희가 다른 계획을 갖고 있다 해도.

 

그러니 오늘 너희가 하는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라. 내일 하려는 일에 대해서도 남은 나날 동안 하려는 모든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라."



 

p. 63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지상에 내려와 어느 수도원을 방문했다. 수도사들은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줄을 서서 성모 마리아께 경배를 드렸다. 수도사 한 명이 시를 낭송하고. 다른 수도사는 색을 넣어 장식한 성서를 성모 마리아께 보여드렸으며, 또 다른 수도사는 성자들의 이름을 암송했다. 줄 맨 끝에 겸손한 수도사 한 명이 서 있었다. 그의 부모는 서커스에서 일하는 소박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그는 당대의 현자들 밑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가 경배 드릴 차례가 되자, 다른 수도사들은 그 때문에 수도원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되어 경배를 그만 마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수도사도 성모 마리아께 자신의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동료 수도사들이 눈치를 주자, 당황한 그는 얼른 호주머니에서 오렌지 몇 개를 꺼내 부모님이 가르쳐준 대로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아기 예수가 그 모습을 보고 방긋 미소를 짓더니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그 수도사의 품에 잠시 맡겼다.



 

p. 88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각자의 몸을 잘 돌봐야 한다. 우리의 몸은 성령이 머무는 신전이며 존경과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한다. 꿈을 위해 투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삶이 소소한 기쁨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기쁨들은 탐색의 길에서 우리를 자극하고, 돕고, 매일의 전투에서 우리에게 휴식의 순간을 선사한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영양 섭취, 수면, 쾌락의 규칙들을 가끔 위반하는 것 역시 죄악이 아니다.

때때로 하찮은 일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마라. 그런 소소한 기쁨이 우리에게 매우 큰 활력을 가져다준다."


 


p. 89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열린 오찬 자리에 지각했다. 친구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루빈스타인이 그보다 무척 어려 보이는 매혹적인 금발 여인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그는 인색하기로 유명했는데, 그날은 값비싼 요리와 고급 포도주를 아낌없이 주문했다. 식사가 끝나자,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음식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모두 놀란 것을 나도 아네. 실은 오늘 아침에 내가 유언장을 준비하려고 공증인을 찾아갔다네. 딸과 친척들에게 상당한 재산을 남기고, 자선단체에 기부도 많이 하기로 했지. 그런데 그 유언장 속에 나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어. 전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내용이었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좀 더 후하게 대접하기로 마음먹었다네."


 

 


p. 97

우리는 꿈과 이상을 좇아 세상을 편력한다. 그러나 손 닿는 곳에 있던 일을 실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실수를 저지른 뒤에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멀리서 찾느라 시간을 허비했음을 깨닫는다. 실족한 것, 무익한 탐색을 한 것, 그리고 슬픔을 유발한 것에 죄의식을 느낀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집에 보물이 묻혀 있어도 일부러 찾지 않을 때만 발견할 수 있다. 예수를 부인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교황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집 나간 아들이 모든 것을 탕진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환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어떤 것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는 나를 잃었다가 되찾았을 때에야 내 가치를 깨달을 것이다.' 그 과정을 단축하려 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p. 121

수도원장이 말했다. 요한 형제는 기도를 많이 해서 더는 걱정거리가 없다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이 말이 스케타 수도원의 어느 현자의 귀에 가 닿았다. 어느 날 저녁, 현지는 식사를 마친 뒤 수습 수도사들을 불러서 말했다.

"요한 형제가 더 이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너희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투쟁하지 않으면 마음이 약해진다. 요한 형제에게 큰 유혹을 가져다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자. 요한 형제가 그 유혹을 이겨내면, 또 다른 유혹을 가져다주시라고 기도하자. 형제가 유혹에 맞서 투쟁할 때, 우리는 그가 '주여, 이 악마가 저에게서 물러가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고 '주여, 이 악마에 맞설 힘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말하도록 기도해줘야 한다."


 



p. 139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인기 절정의 청년이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신앙에 몸 바치기로 결심했다. 성 클라라는 한창 예쁜 아가씨일 때 정결 서원을 했다. 라몬 룰*은 당대의 위대한 지성들과 교류했지만 오지에 은둔해 살았다.

영적 탐색은 커다란 도전이다.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해 영적 세계로 도피하는 사람은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등지는 것과 비슷하다. 생계를 잇지 못해 청빈 서약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겁이 많아서 겸손하게 구는 것도 마찬가지다.

뭔가를 소유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이 뭔가를 가진 사람을 단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무력한 사람이 금욕을 행하기란 매우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금욕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신의 업적을 찬미해라. 또한 세상과 맞서면서 너 자신도 정복해라."


* Ramon Lull 1232?~1315. 에스파냐 마요르카 출신의 박식한 연금술사이자 신비주의자.

 

 

 

 

p. 149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날마다 기도해라. 말 없는 기도를 하더라도, 기도해야 할 이유를 모르더라도, 기도를 습관으로 삼아라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다음 한 주 동안 매일 기도할 거야'라고 작심해라. 그리고 그 약속을 일주일마다 갱신해라.

그럼으로써 영적 세계와 내밀한 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의지도 단련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실천을 통해 존재의 분투에 필요한 규율들을 발전시킨다. 하루는 기도를 빠뜨리고 다음 날 두 번 기도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루에 일곱 번 기도하고 그 주 내내 기도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삶에는 적절한 리듬과 방법으로 완수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


 

 

p. 187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티포스는 시라쿠사의 압제자 디오니시오스의 궁정에서 권력자들에게 아침을 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디오게네스를 만났다. 디오게네스는 소박한 렌즈콩 요리를 만드는 중이었다. 아리스티포스가 말했다.

"당신이 디오니시오스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면 렌즈콩 같은 것을 먹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대꾸했다. "당신이 렌즈콩을 먹는 것에 만족한다면 디오니시오스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될 텐데."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상대적이다. 꿈을 좇을 때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의 기쁨이다."


 

 

p. 191

터키에 사는 남자가 페르시아에 사는 위대한 현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는 주저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팔고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지혜를 찾아 떠났다.

몇 달 동안 여행한 끝에 마침내 그는 현자가 사는 오두막집을 발견했다. 그는 두려움과 존경심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오두막집 문을 두드렸다. 현자가 문을 열었다.

남자는 현자에게 말했다.

"저는 터키에서 왔습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딱 하나 있어서 여러 달 동안 긴 여행을 했어요." 현자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좋소, 말해보시오."

"제가 하려는 질문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혹시 터키어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현자가 이어서 말했다.

"자, 나는 당신이 하고 싶어 한 딱 하나의 질문에 대답을 했소. 그러니 알고 싶은 것이 더 있으면 당신의 마음에 물어보시오. 당신 마음이 대답해줄 거요." 그러고는 문을 닫았다.


 



p. 200

사람들이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그렇게 굉장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느냐고 물었다.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그건 매우 간단합니다. 대리석 덩어리를 바라볼 때, 나는 그 안에 있는 조각품을 봅니다. 그런 다음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기만 하면 되죠."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한 점의 예술작품을 창조하도록 운명 지어졌다. 그 예술작품이 우리 삶의 중심이다. 온갖 시도들이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좌우한다. 그 예술작품은 대개 두려움, 죄책감, 우유부단함 밑에 수년 동안 파묻혀 있다. 하지만 그 외피를 걷어내기로 결심하면, 또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으면, 맡겨진 사명을 잘 이행할 수 있다. 그것이 세상을 명예롭게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p. 205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적 길에서 환상을 찾거나 이미 영적 길을 거쳐 간 사람들의 진술을 좇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 믿음은 순수하고 투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탄생하며, 다른 것과 뒤섞이지 않는다. 어느 작가가 사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에 대한 경험이 어떠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제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내가 아는 유일한 경험은 신에 대한 내 믿음의 경험입니다." 그렇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p. 218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개인의 전설은 겉으로 보이는 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것을 경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원하면 강력한 에너지가 작동하고,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더 이상 우리 자신에게 숨길 수 없다. 뭔가를 원할 경우, 선택을 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꿈을 좇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오래된 습관들을 버려야 하며, 어려움과 실망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대가는 개인의 전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치르게 되는 대가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어느 날 인생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한 모든 일을 평가할 것이고, 내 삶을 낭비했어'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 말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고약한 말들 중 하나다."


 



p. 223

시토 수도회 사제인 마르코스 가르시아가 말했다. "신은 우리가 은총 밖에서 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때때로 우리에게서 축복을 앗아가신다. 그러나 한 영혼을 어느 정도까지 시험할 수 있는지 아시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아신다. 그러니 그런 순간에 '신께서 나를 버리셨어'라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오히려 우리가 때때로 신을 버린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 때 그 시련을 극복하도록 충분한 은총도 내려주신다.

신에게서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는 신께서 우리의 길 위에 놓아두신 것들을 우리가 정말로 잘 활용하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p. 233

작곡가 넬슨 모터는 브라질 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바이아에 머무를 때 망이 메니니냐 두 간토이스'를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택시를 탔다. 가는 도중에 차의 브레이크가 풀렸고, 길 한가운데에서 차가 전속력으로 돌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다행히 그는 택시에서 무사히 내렸다.

망이 메니니냐를 만나자, 넬슨은 가까스로 피한 사고에 대해 서둘러 이야기했다.

망이 메니니냐가 말했다.

"어떤 일들은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우리가 지나치게 많은 문제를 경험하지는 않게 해 주시지요. 어떤 일은 교통사고가 그 단계에서 당신 인생의 일부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결론지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그 일이 일어났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 Mie Menininha do Gantois, 브라질 바이아 주의 전통 종교 칸돔블레의 유명 인사.


 


p. 236

성지순례를 했던 한 여자가 강연회장 출구에서 여행자에게 말했다.

"성 야고보의 길에 관해 당신이 한 이야기에 빠진 것이 하나 있어요. 저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성 야고보의 길에서든 다른 길에서든 주변 순례자들의 리듬을 따라가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순례 초반에는 저도 제가 속한 그룹의 순례자들과 같은 보조로 걸으려고 애썼어요. 그러다 보니 피곤해졌어요. 제 몸이 견딜 수 있는 이상의 일을 하고 있었던 거죠. 결국 왼쪽 발의 힘줄에 문제가 생겼고, 이틀 동안 꼼짝 못 하고 있으면서, 제 고유의 리듬으로 길을 가야만 성 야고보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물론 그렇게 하니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더 걸렸고, 자주 혼자 걸어야 했어요. 하지만 제 고유의 리듬을 존중했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었죠. 이제부터 저는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이 교훈을 적용할 거예요."


 


p. 241

버스카글리아는 아기 예수를 만나지 못한 넷째 동방박사 이야기를 전한다. 그 역시 베들레헴 하늘에서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기 예수가 있던 곳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 가난하고 고달픈 처지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를 막아 세우고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다.

30년 뒤, 동방박사는 이집트, 갈릴리, 베다니 등을 거쳐 예수의 자취를 따라갔고, 드디어 예루살렘에 당도했다. 하지만 예전의 아기는 성인이 되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다. 그리스도에게 바치려고 진주를 샀지만, 길을 가다가 만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거의 다 팔아야 했다. 이제 그에게는 딱 하나의 진주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어.. 바로 그때, 그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다. 너는 평생 동안 나를 만났다. 내가 헐벗었을 때 입혀주었고,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갇혀 있을 때 나를 찾아와 주었다. 네가 길을 가면서 만난 가난한 자들 속에 내가 있었다. 그 사랑의 선물들이 고맙구나."




 

p. 242

모든 사람이 기술자 또는 기계공의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세상을 묘사한 SF 소설 속 이야기이다. 그 세상에서는 몇몇 사람들만 아무런 능력 없이 태어난다. 그런 사람들은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광인 취급을

받으며, 광인 보호시설로 보내진다. 어느 날 그 광인들 중 하나가 보호시설 내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과학과 예술의 지식을 습득하려고 노력한다. 지식을 충분히 습득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내 붙잡혀서 도시 바깥에 있는 연구센터로 보내진다. 연구센터의 책임자가 그에게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처럼 자기가 갈 길을 스스로 노력해서 찾아내는 사람들을 가장 존경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발전하는 것은 당신 같은 사람들 덕분입니다."


 

 

p. 249

스케타 수도원에서 수련 수도사가 니스테로스 신부에게 물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이 한 일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흡족해하셨다. 성전에서 세금을 거두는 세리는 자신이 한 일을 부끄러워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흡족해하셨다. 세례 요한은 사막에 은둔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흡족해하셨다. 요나는 큰 도시 니느베로 갔다. 그러자 하느님은 흡족해하셨다.

니스테로스 신부가 대답했다.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하느님은 흡족해하셨다. 엘리야는 이방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느님은 흡족해하셨다. 다윗은 너의 마음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아라. 너의 마음이 너의 꿈과 전적으로 일치한다면, 바로 그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p. 250

불교의 한 스승이 제자들과 도보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도중에 제자들이 자기들 중 누가 가장 훌륭한지 가리려고 토론을 벌였다.

한 제자가 말했다.

"나는 15년째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가 한술 더 떴다.

"나는 부모님 집을 떠난 이래 계속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세 번째 제자가 말했다.

"나는 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그들은 어느 사과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뭇가지들이 사과의 무게 때문에 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스승이 말했다.

"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가지가 휘어 땅에 닿는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현자는 겸손하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가지가 위로 솟는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동료보다 낫다고 여긴다."

 

 

 

 

 

p. 261

요정 셋이 왕자의 세례식에 초대받았다. 첫째 요정 왕자에게 사랑을 선물로 주었다. 둘째 요정 바라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행운을 선물로 주었다. 셋째 요정은 미모를 주었다. 조금 있으니 마녀가 나타났다. 왕자의 세례식에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난 마녀는 왕자에게 불운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미 모든 것을 가졌으니, 나는 너에게 다른 것을 주겠다. 너는 무슨 일을 하든 큰 재능을 발휘할 것이다."

왕자가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그는 잘생겼고, 부유했고, 사랑도 얻었다. 하지만 땅 위에서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화가, 조각가, 작가 음악가, 수학자가 되려고 시도했지만 무엇 하나 끝을 보지 못했다. 너무 빨리 싫증을 냈고, 곧바로 다른 일을 시도했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길은 한 곳으로 통한다. 그러나 너만의 길을 선택해라. 그 길을 끝까지 가라. 모든 길을 두루 편력하려 하지 마라."


 

 

p. 26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써라! 편지를 일기를. 아니면 전화 통화하면서 종이에 메모라도 해라. 어쨌든 써라! 쓰는 행위는 우리를 신 그리고 이웃과 가까워지게 한다. 이 세상에서 너희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잘 이해하고 싶다면 글을 써라.

아무도 그 글을 읽지 않는다 해도, 또는 너희가 비밀로 간직하려 한 글을 결국 누군가가 읽는다 해도 글을 통해 너희의 영혼을 작동시키도록 애써라. 글을 쓰는 단순한 행위가 생각을 정리하고 주위의 일들을 명확히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가 기적을 일으킨다. 그것은 고통을 치유해주고, 꿈을 실현해주고, 잃어버렸던 희망을 일깨워준다. 글에는 힘이 있다."


 

 

p. 278

여행자가 친구 둘과 함께 뉴욕의 거리를 산책하고 있었다. 평범한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분위기가 험악해져 치고받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시간이 흘러 분이 조금 가라앉자, 그들은 바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친구가 사과를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이번 일을 통해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걸 깨달았네. 만약 자네들이 낯선 사람이었다면, 나는 더 자제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자네들이 내 친구이고 나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준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말았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보네." 아마도 인간의 본성은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그런 본성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p. 279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시詩에 대해 훌륭한 정의를 내렸다. 그 정의를 인생에 대한 정의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는 섬세한 과도함으로 독자를 놀라게 해야 한다. 시구들이 마치 독자 자신의 표현인 것처럼, 머나먼 옛날의 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이미 독자의 마음속을 아는 것처럼 독자를 감동시켜야 한다.

시의 아름다움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능력에 있지 않다. 시는 어느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우리를 놀라게 해야 한다. 마치 석양처럼 기적적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해야 한다."


 

 

p. 283

믿음을 깊이 부정하던 시절인 15년 전, 여행자는 아내 그리고 친구 한 명과 함께 리우데자네이루의 어느 식당에 있었다. 술을 조금 마셨는데, 갑자기 옛 친구가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행자와 함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다니던 친구였다.

여행자가 그에게 물었다.

"그래, 지금 자네는 무슨 일을 하나?" 친구가 대답했다.

"나는 사제라네."

친구와 함께 식당을 나온 여행자는 보도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잠을 자는 어린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대해 얼마나 근심하실지 보이나?"

사제인 친구가 대답했다.

"물론 보이지! 그분은 자네가 그걸 보도록, 그리고 그것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자네의 눈앞에 저 아이를 데려다 놓으신 걸세."


 

 


p. 290

윌리엄스는 다음과 같은 기이한 상황을 묘사했다. "완벽한 인생을 한번 상상해보아라. 당신이 완벽한 사람들과 함께 완벽한 세상 속에 있다고. 당신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졌고,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적절한 때에 완벽하게 해낸다. 그 세상에서 당신은 바라고 꿈꾼 그대로 모든 것을 이룬다. 그리고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살 수 있다.

백 년 또는 이백 년 뒤, 당신은 멋진 배경 속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벤치에 앉아 '정말 지겨워! 인생의 희로애락이 부족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 앞에는 빨간 버튼이 있고 버튼에 '돌발사건'이라고 적혀 있다. 당신은 그 단어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고려해본 뒤 버튼을 누를 텐가? 물론이라고! 버튼을 누른 다음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다시 나와라."


 

 

 

p. 300

독실한 유대인 여러 명이 유대교 회당에서 기도하다가 "A, B, C. D"라고 말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성구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되풀이되었다.

“A, B, C. D."

기도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소년 한 명이 "A, B. C. D"라고 계속 되뇌는 모습이 보였다. 랍비가 아이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얘야. 너 왜 그러는 거냐?"

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성구를 모르거든요. 그래서 제가 알파벳을 말하면 하느님께서 그 글자들을 골라 알맞은 단어를 만들어주셨으면 해서요." 랍비가 웃으며 말했다.

 

"교훈을 알려줘서 고맙구나. 네가 하느님께 글자들을 맡기듯이, 나도 이 땅에서 내가 보내는 나날들을 하느님께 맡기면 되겠어."



 

p. 318

제목에 나오는 '마크툽Maktub'은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뜻으로, 신의 섭리를 은유합니다. 아랍 사람들은 신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체념할 때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체념'을 의미할까요? 신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을 억지로 가게 만드는 무자비한 존재인 걸까요?

하느님은 선하고 자비로운 분이며, 자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 인간을 빚으셨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한 꿈과 재능을 선물하시고, 그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길, 귀하고 특별한 길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그 길을 찾는 것. '자아의 신화'를 찾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주셨고, '표적'을 깨닫는 지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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