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기간 중 손에 쥔 책을 다 읽었습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입니다. 책을 읽고 한 문장만으로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면, 이 땅에 태어난 이 시대의 남자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얼마전에 읽은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그의 글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구입한 책입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흉한 칼날이 다시 번뜩여 마침내 삼도의 군사를 한번 싸움에 모두 잃었으니 누가 바다 가까운 여러 고을을 지켜주리오.. 한산을 이미 잃었으니 적들이 무엇을 끼리리오………
칠천량 패전과 한산 통제영의 붕괴가 임금에게 보고된 모양이었다. 양호는 계속 읽어나갔다.
・・・・・・ 지난번 그대의 벼슬을 빼앗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케 한 것은 역시 나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니 내 무슨 할말이 있으리오. 내 무슨 할말이 있으리오……....
이것이,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인에게 임금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왔다.
양호는 계속 읽었다.
・・・・・ 이제 그대를 상복을 입은 채로 다시 기용하여 옛날 같이 전라좌수사 겸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 하노니 그대는 부하를 어루만지고 도망간 자들을 불러 단결시켜 수군의 진영을 회복하고 요해지를 지켜 군의 위엄을 떨치게 하라. 그대는 힘쓸지어다. 군율을 범하는 자는 장을 막론하고 그대의 지휘로 처단하려니와 그대가 나라 위해 몸을 잊고 나아 감은 이미 다 겪어보아 아는 바이니 내 구태여 무슨 말을 길게 하리오…………
내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 통제사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라좌수사였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무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 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다는 나의 죄는 유죄가 되어도 하는 수 없을 것이었다.
나는 못대가리 하나 건질 것 없는 텅 빈 바다와 목 잘린 시체가 썩어가는 연안을 생각했다. 나는 먼 섬들에서 오르던 적의 봉화를 생각했고, 불타버린 한산 통제영을 생각했다. 물러설 자리 없는 자의 편안함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사지에서는 본래 살 길이 없었다. 그러자 몸의 깊은 곳이 자꾸 뜨거워져갔다. 성욕 같기도 하고, 배고픔 같기도 한 것이 자꾸만 내 속에서 끓어올랐다. 양호는 보따리를 풀어 지필묵을 꺼내놓고 동헌으로 물러갔다.
동헌에서 양호는 임금에게 가져다 바칠 나의 답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루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텅 빈 바다 위로 크고 무서운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각사각사각 수평선 너머에서 무수한 적선들의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환청은 점점 커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환청을 떨쳐냈다. 식은땀이 흘렀고 오한에 몸이 떨렸다. 저녁 무렵까지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양호가 종을 보내 답신을 재촉했다. 나는 붓을 들어 장계를 써나 갔다. 문장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런 의전상의 단어와 상투적인 어구를 끌어대며 장계를 지었다. 나는 장계를 오랫동안 들여 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 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삼도수군 통제사 신이 올림
46
통제공. 용맹할 때는 용맹하고, 집을 낼 때는 겁을 내는 것이 병가의 전략이라 알고 있소만 ・・・・・・ 그게 바로 무운이라는 것 아니 겠소.
(이 자식 봐라………….)
내 몸의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흔들리면서 솟구쳤다. 나는 침을 삼켜서 그 뜨거운 것을 몸속으로 밀어넣었다.
나는 물었다.
-그래, 지금은 그 어느 때요?
배설은 대답했다.
-허허. 그야통제공께서 판단하실 일이 아니겠소. 저처럼 병든 몸이 어찌…....
(이 자식 봐라… --)
나는 물었다.
-칠천량에서는 마땅히 겁을 내야 할 때였소?
배설의 옆자리에서 안위의 얼굴은 얼어붙어 있었다. 배설은 대 답했다.
- 용맹과 겁은 흔히 같은 것이오. 다만 쓰일 때가 다를 뿐이오. 송장에 덮인 바다 위에서 목숨의 귀함을 깨닫는 것 또한 용맹이 오, 용맹은 인도에 가까운 것이오. 아시겠소? 통제공. (베어야 하나?)
내 몸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우는 칼의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52
위관은 집요했으나,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거기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임금뿐이었다. 임금은 나를 죽여 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고 나를 살려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히데요시가 전 일본의 군사력을 휘몰아 직접 군을 지휘하며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풍문 앞에 조정은 무겁게 침묵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의금부에서 풀려난 뒤부터 추운 날에는 허리가 걸렸고 왼쪽 무릎이 시리고 쑤셨다. 무릎이 시릴 때, 두 다리가 땅을 밟지 못하는 것처럼 얼얼했다. 뼛속의 구멍으로 찬 바닷바람이 드나드는 듯 싶었다. 뱃속을 드나드는 바람은 내 몸 안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임금의 숨결이며 기침소리처럼 느껴졌다.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활을 당겨 표적을 겨눌 때 나는 내 어깨에 들러붙은 적을 느꼈고 칼의 세를 바꾸려고 몸을 돌릴 때 나는 내 허리와 무릎 속에서 살고 있는 임금을 느꼈다. 시린 무릎으로 땅을 온전히 딛지 못할 때도 내 몸은 무거웠다.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구들에 불을 떼지 않고 자는 밤에도 땀을 흘렀다.
칼의 노래 157
종자를 박멸해서 시체로 바다를 덮을 것인지는 적이 아니라 나와 내 함대가 결정할 일이었다. 적은 귀로의 바다 위에서 죽음을 통과해야만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고. 그 바다에서 적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또 한번 뒤엉킬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그토록 단순하고 자명한 일이 단순하지도 자명하지도 않았다.
새벽마다 식은땀을 흘렸다. 강화 협상 소문은 읍진 수령과 군관 뿐 아니라 격군과 사부들에게까지 퍼져 있었다. 군사들의 마음속에 고향의 밥냄새가 피어나고 있었다. 적의 군세는 날로 집중되었다. 정탐들은 육로와 해로로 선을 대어가며 사흘 도리로 보고해왔다. 강화 협상과 협상 조건과 거기에서 오가는 언어들은 존재하지 않은 것들을 존재하는 것으로 바꾸어놓으려는 허깨비처럼 느껴졌다. 조준할 수 없는 적이었다. 벨 수 없는 전방위의 적이었고 안개 처럼 풀어진 무정형의 적이었다.
겨울이 깊어갔다. 내륙의 산맥을 휩쓸고 내려오는 북풍은 차고 메말랐다. 눈보라 속에서 먼 섬들이 지워졌고 가까운 섬들이 낮게 엎드렸다. 수영의 깃발이 바람에 찢어져 너덜거렸다.
명과 일본이 조선을 분할해서 강화한다면 나는 고려 때의 삼별초들 처럼 함대를 이끌고 제주도로 들어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때는 명과 일본이 그리고 조정 전체가 나의 군사적인 적이 될 것이었다. 아마 그때 나의 함대는 수영을 이탈하거나 나를 배 반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혼자일 수도 있었다.
252
그가 조선 철병을 명령하고 죽었다는 것인데,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시는 이러했다는 것이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술 취한 명의 하급 지휘관들이 히데요시의 유언시를 노래로 부르며 춤을 추었다. 술 취한 이국 군대들이 부르는 노래가 칼처럼 내 마음을 그었다. 그날 나는 취했다. 내 마음속에서 내 칼이 징징 징 울면서 춤을 추었다. 저러한 노래 저러한 시구를 이 세상에 남 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붉게 물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 술 취한 칼은 마구 울었다.
무술년 가을에 나는 내 타격 방위를 설정할 수 있었다. 나는 적 의 인후를 찌르고 적의 복심을 찌를 것이었다. 술 취한 명의 지휘관들은 술상 옆에 쓰러져 토했다.
278
감찰관은 병군 총병부에서 파되었다. 나는 인근 유진로 시찰을 나갔다. 명군 감찰관을 만나지 않았다. 감찰관은 진린의 부하들로부터 엇갈리는 진술만을 듣고 떠났다.
서울로 올라간 감찰관은 내가 임금에게 보낸 장계의 원본을 제시해줄 것을 조선 조정에 요청했다. 조정은 겁에 질렸다. 조정은 진린에게 가해질 천자의 노여움에 조바심혔다. 선전관이 고금도 수영에까지 내려왔다. 선전관은 사실을 요구하지 않았고 해결책을 요구했다.
나는 장계 한 장을 새로 써서 선전관에게 주었다. 고흥 남쪽 바다의 전투는 조명 연합함대의 작전이었으며 전투가 끝났을 때 적병의 시체가 무수히 물 위에 떴으나 물살이 빠르고 날이 어두워 조선군이 자른 적의 머리는 다만 열 통이라고 장계에 썼다.
장계를 새로 쓰면서 나는 이 두 통의 장계가 어느 날 임금을 기만한 죄로 나를 죽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수를 서두르는 적정이 다급했으므로, 임금이 나를 죽이게 되는 날은 내가 바다에서 적의 전체를 맞은 이후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미 임금은 나를 다시 죽일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문장의 수사를 띠워서, 곧고 애달픈 충정을 고백하는 문체로 장계를 새로 썼다. 선전관은 새로 써준 장계를 들고 서울로 떠났다. 조선 조정은 내가 새로 써준 장계를 명군의 감찰관에게 제시 했다.
286
숭품되었다.
정헌대부를 내리는 교서에서 임금은 말했다.
바람 불고 서리 찬 국경으로 임금의 수레는 떠돌고, 갑옷 번쩍이고 말발굽 소리 요란한 옛 도성의 선왕의 무덤은 천 리나 떨어졌으니. 돌아가려는 한 가닥 생각이 마치 물이 동으로 흐르듯 하던 차에 이제 적의 형세가 기울어지니 하늘이 노여움을 푸는 줄을 알겠도다.
아이. 100리를 가는 자는 90리로 반을 삼는 법이니 그대는 끝까지 힘쓰라.
8월 1일, 판옥선 74척, 협선 92 척을 좌수영 앞바다에 집결.
8월 24일 발진, 남해도 관음포에서 1박,
8월 25일 사량도에서 원균과 합류, 당포에서 1박,
8월 26일 물결 사나워 포구에서 대기.
8월 27일 웅천에 도착, 경상 해안 쪽 적에 대한 정보 수집,
9월 1일 새벽에 몰운대 도착, 부산 동래 해역을 수색, 부산포에 정박 중인 적선 5백여 척을 발견 장사진으로 돌격해 들어가 전투, 6차례 전 투로 적선 150여 척 격침.
이 싸움에서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했다. 정운은 이순신이 가장 아끼던 장수들 중의 하나였다. 이순신은 정운에 관해 별도의 장계를 올려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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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몸의 원초성
이순신을 한국의 전설적인 장수로 만들어준 그의 자질 중 하나는 비범한 용기다. 해야 마땅한 일이라면 어떤 위험이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하는 그의 능력은 거북선 발명이나 영리한 전술로 표현된 그의 지략과 함께 자주 찬미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용기를 웅변하듯 알려주는 기록의 하나가 명량해협에서 열세의 전선을 이끌고 대승을 거두기 전에 그가 죽으려고 하면 곧 살고 살려고 하면 곧 죽는다"는 오자룡의 말을 장수들에게 들려주고 격려 했다는 난중일기 중의 일 절이다. 이 구절은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이 출전을 도모하며 장졸들에게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라고 명하는 말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소설 속의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해로 돌아온 이후 어디가 자신의 사진이어야 하는가를 계속 묻는다. 그에 따르면 무인됨의 핵심은 명예로운 죽음에 대한 소망이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자리에 자신을 몰아넣은 그는 장렬하게 죽고자 하는 의지를 끊임없이 자기 내부에 소생시킨다. 그런 점에서 그가 그의 군과 싸우다 죽은 일본의 젊은 무사의 칼을 살펴보다가 거기에 새겨진 명문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 장면-칼의 노래」 중 순전한 창작의 하나인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청춘의 날들은 휴 어져가고.
널린 백골 위에 사쿠라 꽃잎 날리네"
해설 원시적 파토스의 비극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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