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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독서정리

스물여섯 번째 책 : 장수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by 마파람94 2021. 6. 29.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소설이든 산문이든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펼치면 단숨에 읽게 됩니다. 이번 책은 예전에 읽었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과 유사한 수필형식의 글입니다. 연재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것으로 보이는데, 독자들과 소통한 내용들도 많이 엿보입니다. 작가의 평소생각을 엿볼수 있는 대목들이 많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재미있고, 생각하게 되는 글입니다.

특히 공중부양 관련 내용은 책을 든채 10여분을 배꼽이 빠져라 껄껄거렸습니다. 이 서너쪽이 -지난 2년을 통틀어- 단언컨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웃음과 긴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가장 가까운 두사람에게 읽게 했더니 '이게 뭐?' 라는 냉랭한 반응이 돌아와서 미스테리함을 느끼기도 했고요. 하하

밑줄 가져와 보겠습니다.


p. 40 : 공중부유는 매우 즐겁다

p. 39


평소 꿈이란 걸 별로 꾸지 않는다. 학자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하니. 사실은 나도 남들 만큼은 꿀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면 머릿속에 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눕자마자 잠들어 REM 수면의 수렁 속에서 장어처럼 아침까지 쿨쿨 자버리기에, 가령 꿈을 꾸었다 해도 그 기억은 국자로 사막에 물을 뿌리듯 스르르 허무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모양이다. 꿈 입장에서도 기껏 오 색찬란 재미난 이야기를 펼쳐줬는데 아침이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하면 허망할 터다. 나도 변변찮으나마 소설가니까 그 기분은 잘 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기억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니까 할 수 없군요.

간혹 한밤중에 퍼뜩 눈이 떠지는데, 그런 때는 직전까지 꾸던 꿈의 내용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금세 다시 누워서 자버리는 통에 아침에는 역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 나는 것은 내가 한순간이나마 꿈의 내용을 선명히 기억했다는 허무하고 슬픈 사실뿐이다. 분명히 아는 노래인데 멜로디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때의 무력감과 비슷하다.

 

p. 119


그런데 공중부유 꿈만은 예외다. 옛날부터 공중부유 꿈을 곧 잘 꾸는데, 이 꿈은 어느 것이나 신기할 만큼 선명하게 기억난다. 꿈속에서는 공중에 뜨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피융 날아올라 그대로 허공에 머무르면 된다. 특수한 근육을 쓰는 것도 아니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떠 있을 수 있다. 좀 더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갈 수 있고, 내려오고 싶으면 내려올 수 있다. 어째서 남들은 못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해보면 아주 간단한걸, "보세요. 간단해요. 요령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요"라고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외려 너무 단순하고 간단해서 요령을 설명하기 힘들다

공중에 뜬다 해도 그렇게 높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지상에서 1미터쯤 이유는 모르지만 높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지상 50센티미터쯤에 초연히 둥둥 떠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중부유의 이상형이다

 



무척 즐겁다

나는 이 패턴의 꿈을 옛날부터 정기적으로 꾸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십오년 전쯤에도 이런 내용의 에세이를 아사히 신문에 쓴적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나는 옛날부터 공중에 뜨는 꿈을 곧잘 꾼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기억도 못할 만큼 오래전부터 같은 패턴의 공중 부유 꿈을 줄기차게 꿔온 셈이다. 그리고 비록 꿈이지만 그 감각은 내 몸에 제법 탄탄히 배었다. 그래서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가 공중 부유인지 부양인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믿고 말고를 떠나 그래서 뭐 어쨌다고?'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게 공중 부유란 결코 특별한 일도 기이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건 나도 한다. 물 론 꿈속에서지만,

공중에 뜨는 꿈을 정기적으로 꾸는 것이 정신분석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고, 특별히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 꿈에 대해서는 분석적인 의미 같은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겠다 싶어서다. 이런 말은 좀 '위험'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순수하게 계시적인 종류의 꿈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언젠가 정말로 공중에 뜨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좋을 것 같다. 비록 꿈속일지라도, 의미도 목적도 없이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건 말할 수 없이 기분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싱글싱글 웃음이 난다. 내 킬 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까

실은 이와 매우 유사한 '기분좋음'을 최근 들어 실생활에서 맛보게 되었다. 올여름, 자유형으로 2000미터 이상 쉬지 않고 나아가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어느 날 아침 문득 이렇다 할 계기도 없이 갑자기 술술 나아가고 있었다. 그전까지 자유형으로는 길어봐야 500미터쯤밖에 나가지 못했고 그나마도 숨을 헉헉댔는데, 지금은 한 시간쯤 헤엄쳐도 신기할 만큼 멀쩡하다. 숨도 차지 않는다. 어쩌다 내 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잘 이해가 안 돼지만 어쨌거나 결과가 좋으면 만사 좋은 거니까. 혼자 묵묵히 레인을 왕복하면서 기분이 좋아서는 수중에서 싱글거리곤 한다. 이런 연유로 최근 무라카미는 철인삼종경기까지 남은 종목은 사이클뿐이다. 하며 나잇값도 못하고 불타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클이 힘들단 말이죠. 정말로.

 

p. 109 : 초 중하급 달리기 동호회




p. 123
니. 음. 굳이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나이를 먹으며 점점 떨어지는 부분이 성적인 잠재력만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능력'도 떨어진다. 확실히 그렇다. 나만 해도 젊어서는 꽤 빈번히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사소한 일로 좌절해 눈앞이 캄캄해지거나,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찔러 발밑이 우르르 무너지는 심정이 된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고달픈 나날이었다. 이 글을 읽는 젊은이 중 누군가는 지금 그런 괴로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태로 앞으로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괜찮다.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렇게 처참할 정도로는 상처받지 않게 된다.

어째서 나이들수록 상처 받는 능력이 떨어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또 그것이 나 자신에게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쪽이 편한가로 따지면 단연 상처를 적게 받는 쪽이 편하다. 지금은 누가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친구라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해도 믿고 빌려준 돈을 떼여도, 어느 아침 펼친 신문에 '무라카미는 벼룩 똥만큼의 재능도 없다'고 쓰여 "있어도(아주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그다지 상처 받지 않는 다. 물론 마조히스트가 아니니 기분이 좋지는 않다.

 

 

p.124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낙담하거나 며칠씩 끙끙거리지는 않는다. '별수없잖아. 다 그런 거지' 하고 그냥 잊어버린다. 젊어서는 그러기가 불가능 했다. 잊고 싶어도 쉽게 잊지 못했다.

결국은 '별수없잖아. 다 그런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즉 비슷한 일을 몇 번이나 겪어본 결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뭐야, 지난번이랑 똑같잖아'라는 생각이 들고, 매번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좋게 말하면 터프해졌고, 나쁘게 말하면 내 안의 나이브한 감수성이 마모됐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뻔뻔해진 셈이다. 변명은 아니지만 사소한 개인적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어떤 나이브한 감수성을 품은 채 내가 속한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는 건 소방수가 레이온 셔츠를 입고 화재 현장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내가 나이들면 그다지 상처를 받지 않게 된 것은 뻔뻔 해져서만은 아니라고 본다. 어느 날을 경계로 이 나이 먹어서 젊은이처럼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건 썩 보기 좋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고, 그뒤로 최대한 상처받지 않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해 온 것이다. 그런 인식에 이른 경위까지 말하자면 얘기가 너무 길어지니 덮어두지만(덮어두는게 많아서 미안합니다), 그때 나는 새삼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쉽다는 건 젊은이에게 흔히 보이는 경향인 동시에, 그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리가 아닐까 한다.

 

 

 

p. 170

무엇 보다 무인 벨트가 눈앞을 쉼 없이 흘러가는 광경은 상당히 압박감이 든다. '자. 다음은 뭐야, 뭐로 할 거냐고 하며 다그치는 느낌이다. 자고로 회전초밥이란 여러 가지 초밥이 '여어, 안녕, 적당히 알아서 드시구려. 우리도 적당히 알아서 돌아가고 있으니까' 하듯이 일찍부터 병렬적이고 수평적이고 별다른 명분 없이 컬러풀하게 존재하기에 나름대로 존재가 성립하는 것이지. 그냥 벨트만으로는 시각적으로 꽤 괴롭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뭐 그런 생각에 뜬금없이 잠기게 된다.

 

p. 169


게다가 접시가 눈앞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신속히 집어내는 작업도 직접 해보면 은근히 긴장된다. 물론 대단한 속도가 아니니 못 잡고 놓칠 일은 없을 테지만, 세상에는 무슨 일이 벌어 질지 모르는 법이다. 혹 실패하면 다시 만날 때까지 일 분쯤 걸리겠지 생각하면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는 좀 과장이지만, 역시 두근두근한다.

초밥집 요리사도 '쯧, 정말이지 굼뜬 손님일세. 접시 하나 제 대로 못 집느냔 말이야' 하고 한심하게 볼 것 같다. 점심 한끼 먹 자고 회전초밥집에 들어갔는데 그런 수모를 당하기는 싫다.

그런 연유로 마래미와 오징어와 참치와 전갱이만 먹고 바로 가게를 나왔다. 몹시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장이 튼튼한 편인데도 그날은 저녁때까지 속이 더부룩했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서도 '지금도 거기서는 텅 빈 검은 벨트가 '자, 뭐로 할래. 다음은 뭐로 할 거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터덜터덜 돌아가겠지'라는 상상에 긴장돼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엔 실로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 아가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p. 200
그것이 말보로 맨의 '알터 에고(제2의 자아)라는 것을, 그 모습을 보면 늘 가슴이 설렜다.

뉴저지에 살 때, 일본에서 온 사람을 차에 태우고 그 도로를 타고 올라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간판 뒤쪽을 가리키면서 "저게 무슨 광고인 것 같아?"라는 퀴즈를 냈다. 그러나 답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흠모르겠는데 상상도 안 돼" 라고 했다. 지나쳐서 뒤돌아보고서야 "뭐야 저거였구나" 하기 마련이다. 뒷모습만 보고도 "말보로 맨이잖아요" 하며 정답을 맞힌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광고업계 사람이었다. 전문가는 역시 다르다.

"그래도 오려내지 않은 오모테산도의 말보로 맨 역시 내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는 언제나 고독했다. 늘 혼자서 쓸쓸한 얼굴로 담배를 물고 있다.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 고독함은, 그렇다―그가 기묘한 뒷면을 품었기에 한층 도드라진다

오모테산도에 새로 세워진 말보로 맨에게서는 이제 고독한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옛 말보로 맨이 오모테산도와 아오야마 대로에 드리웠던 불가사의한 아우라도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 아오야마 다리 부근을 걸을 때마다 그건 이제 사라져버렸구나'란 생각에 쓸쓸해진다. 형체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형체 없는 것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p. 214
아로의 군더더기 없고 적확한 디자인이 그야말로 빛을 발한다.

성능을 따지면 별것 없다. 아니 확실히 말하자면 좀 문제가 있었다. 120킬로미터를 넘기면 핸들이 후들대고 핸들에서 손을 살짝 떼면 바퀴가 '끼이이이이익' 하고 왼쪽으로 활을 그리며 돌아갔다(이 활에 딱 맞는 긴 커브가 도메이 고속도로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위에 종종 자랑했다). 에어컨은 휜 안개를 내뿜을 뿐 거의 무용지물이다. 파워스티어링이 없는 데다 핸들이 유난히 무거워서 평행주차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맡기고 싶을 지경이었다. 차내에 플라스틱 냄새가 지독해서 어지러울 정도고, 도로의 소음이 그대로 들어온다. 변속레버를 넣기도 어렵거니와 곧바로 흔들거린다.

 

p. 215



그래도 정말로 즐거운 차였다. 나는 이것을 인생 첫 차로 선택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마저 한다. 왜냐하면 이 차에는 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설명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렷이 알 수 있는' 차였다. 그런 차는 찾기 힘들다. 세상에 훌륭한 차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표정이 생생한 차는 그리 많지 않다.

확실히 속도는 잘 나지 않았다. 그래도 메르세데스로 뚱하니 시속 120킬로미터를 내달리기보다. 이 차로 80킬로미터를 밟는 쪽이 훨씬 박력 있었다.


p. 230
"여러분과 함께 아침 조깅을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러십시오" 하기에, 나도 따라 달렸다.

그해 9월에 있을 아시아 대회 대표였던 다니구치, 가나이 선수는 마지막 맹연습중이었다. 이 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도 철저히 계획하고 있었다. 세코 감독이 지역에서 운영하는 육상 트 랙에서 맨투맨으로 다니구치 선수를 지도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이었는지 몰라도 내 눈에는 사 뭇 혹독했다. 1000미터 전력 질주, 200미터 조깅, 숨 고른 다음 다시 1000미터 전력 질주를 끝없이 되풀이했다. 기록이 떨어지면 감독의 호통이 날아갔다. 침인지 뭔지 모를 것을 흘리거나 토 하면서, 다니구치는 텅 빈 트랙을 묵묵히 달렸다.

몇 달 뒤 그와 가나이 선수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듣고서 나는 가장 먼저 그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치렀던 고생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눈물이 흘렀다. 물론 나는 그들과 비교도 안 되는 아마추어 그중에서도 초급 러너다. 그러나 뻔뻔한 말인지 몰라도 그들이 느꼈을 괴로움이나 기쁨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다. 경기에서나 인생에서나 뜻을 못다 이루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심정은 원통함 외의 그 무엇도 아니었으리라. 달리다가 힘들어질 때면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린다. 힘들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달릴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잖아'라고 생각한다.


p. 239
여행의 벗, 인생의 반려

여행에 무슨 책을 가져갈 것인가는 동서고금 누구나 고민해본 고전적 딜레마일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독서 성향이 다르고, 여행 목적과 기간, 장소에 따라서도 선택의 기준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결론을 내기는 힘들다. 하지만 만약 당신에게 이거라면 언제 어떤 여행이든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만능책이 한 권 있다면 인생이 편해질 확률이 상당히 높다

내게는 주오코론샤에서 나온 체호프 전집』이 그런 책이다. 왜 체호프 전집』이 여행에 최적인지, 적어도 내게는 꽤 명확한 이 유가 있다

(1) 단편소설 중심이라 끊어 읽기 쉽다
(2) 어느 작품이나 완성도가 높아서 실망하는 일이 거의 없다.
(3) 문장이 읽기 쉽고 담박하면서
(4) 내용이 풍부하고 문학적 향취가 충만하다.
(5) 사이즈가 적당하고 무겁지 않으며, 표지가 딱딱해서 구겨지는 일이 없다.
(6) 혹 누가 제목을 보더라도 '체호프를 읽는다면 그렇게 이상 한 사람은 아니겠군'이라고 생각해준다. 이건 어디까지나 덤이 지만.
(7) 이게 상당히 중요한 점인데, 몇 번씩 읽어도 질리지 않고 매번 새롭게 작은 발견을 한다.

이런 연유로, 나는 여행할 때 거의 예외 없이 체호프 전집』 한 권을 가방에 넣어간다. 지금까지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유일한 문제는 읽고 나서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것 정도일까(대개는 놔두고 온다).

같은 주오코론샤에서 졸역으로 레이먼드 카버 전집을 낼 때. "가능하면 체호프 전집』과 같은 판형 같은 체계로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만큼 이 체호프 전집이 마음에 든다. 그러고 보니 레이먼드 카버가 가장 경애하던 작가가 안톤 체호프다. 그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지 모르겠다.



p. 267
'이건 좀 아닌데' 하고 늘 생각했다. 크리던스나 도어스가 개인적으로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실시간으로 쭉 들어왔지만, 비틀스나 스톤스의 음악이 각별히 좋아지게 된 것은 요 칠팔년 사이다. 그리스의 섬에서 살 때 별 이유 없이 갑자기 듣고 싶어져서 비틀스를 줄기차게 들었다. 덕분에 '화이트 앨범'을 들으면 지금도 그리스의 가을 오후의 인적 없는 해안이 눈앞에 떠오른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리고, 하늘은 끝없이 맑고 드높고, 구름은 덤벼들 것처럼 새하얗다. 소나무 숲 냄새가 난다. 생각해보면 화이트 앨범 =그리스 해안도 묘한 조합이지만,

'화이트 앨범' 얘기를 하자면, 옛날 어디서 본 가사에 <오블라 디 오블라다>의 한 소절이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흘러간다'라고 쓰여 있었다. 우헤헤. 엄청 파격적인 가사잖아. 과연 존 레논(인지 폴 매카트니인지 다운걸 하면서 가만히 들어보니. Obladi, Oblada, Life goes on, blah!

였다. 짐작건대 그렇다. 문맥으로도 이 '블라'는 브래지어의 브라bra"가 아니라, 구호처럼 내뱉은 blah ! 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압운을 맞추려는 뜻도 있고, 그건 그렇고,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흘러간다'는 이미지도 매우 재미있고 마음에 든다뭐, 내 마음에 든다고 해도 별 수 없지만,

계속 속옷 얘기로 흘러가서 아침부터(지금은 아침입니다) 송구합니다만, 얼마 전 나온 브라이언 애덤스의 음반에 <I Wanna Be Your Underwear (나는 네 속옷이 되고 싶어)>라는 곡이 있는데, 이 가사는 최근 들은 노래 중에 제일 형편없었다. 들을 때마다 진심으로 '이게 뭐야?'라고 생각한다.

'나는 네 침대의 시트가 되고 싶어/네 털을 깎는 면도칼이 되고 싶어/네가 걷어차는 하이힐이 되고 싶어/네가 핥는 루즈가되고 싶어/네 속옷이 되고 싶어…

이런 직접적이고 강박적이며 위험한 문구가 끝없이 나열되는데, 으음, 완전히 스토커의 정신세계 아닌가 싶다. 요즘 그런 유의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모양인데, 이런 사람이 집요하게 따라붙으면 여자들은 좀 무섭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이미 성실한 비교적 성실하다는 말 입니다. 만 어른 시민이 되어버려서 그럴 뿐이고, 이 가사 멋진데'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도 꽤 있을지 모른다. 그런 분위기가 엄연한 사실일지도. 음악 자체야 나도 매우 좋아한다. <18 til i die(죽을 때까지 열여덟 살이라는 근사 한 제목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답니다. 그런데 정말로 죽을 때까지 열여덟 살이라면 분명 피곤할 테죠.

인생은 흘러가니 화제를 바꾸어서, 지난번 '초중하급 달리기 동호회' 다섯 명이 처음으로 에키덴에서 달리고 왔습니다. 와세다대학 동문 세 명, 샤신대학 동문 두 명이라는 괴상한 구성에 장소는 요코하마 '어린이 나라'. 그런데 열한 시 출발로 알고 있는데 도착해보니 아홉 시로 바뀌어 있지 뭡니까 이러면 곤란하지. 후원사에 아사히신문사도 떡하니 들어 있었는데 그리하여 다 함께 햇병아리 편집자 이가라시를 '정신이 어디 갔냐' 쓸모없는 녀석' 하고 걷어차면서 실컷 괴롭혀 주었습니다. 별수 없이 다 함께 10킬로미터 레이스를 달렸는데 나는 이틀 전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참이라 시차 때문에 몸이 풀리지 않아서(변명), 부 회장 에이조에게 처음으로 패하고 말았다. 일등은 역시 우리 팀 유일의 예체능계 다니구치 군(회원번호 3번). 회장인 나는 꼴찌였다. 훌쩍훌쩍.
(책 끝에 뒷이야기를 실었습니다.)



p. 275
보이나요(그림)

p. 274 


나왔다. 당연히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다. 두 번째는 도쿄 지하철에서다. 역시 십 년도 넘은 일이다. 실제로 같은 전철을 탄 사람도 아니었다. 어느 날 석양 무렵 전철 손잡이를 잡고 멍하니 차내 광고를 보는데 사진 속 젊은 여자 모델이 내 머리를 망치로 쾅 내리 쳤다. 그때도 생맥주 한 잔만큼 크 게 숨을 삼켰다. '그래, 나는 이런 여자를 줄곧 찾아 헤맸던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얼굴을 꼼짝 않고 올려다보았다. 한 참이나 멍청한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봤지 싶다.

"하지만 어떤 얼굴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그게 무슨 광고였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때 손을 뻗어서 광고 포스터를 잡아떼어 집에 가져와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은 인생에서 거의 겪어볼 수 없으니까. 그래도 만원 전철에서 그렇게 과격한 짓은 할 수 없었다. 예의 시시하게 저주받은 염소자리 A 형의 피가 내 불타는 본능적 충동에 양동이로 철벅철벅 물을 끼얹었던 것이다. 별 수없지 않나

그 두 여자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 나는 둘의 얼굴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강렬히 이끌리고도 지금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둘째, 두 사람 다 결국 본모습이라 할 수 없었다. 한쪽은 독일의 매춘부고 다른 한쪽은 광고 모델이었다. 그녀들은 실재하는 사람이되 그 자리에서는 이른바 가상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다.

때때로 내 몸속에 지금의 내가 아닌 '또다른 나'가 숨어 있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평소에는 새근새근 기분좋게 잠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또다른 나'는 무덤덤한 현실의 나와 달리 확고한 '이상형'을 갖고 있고, 그런 사람을 목격하면 눈이 번쩍 뜨여서 못 참고 밖으로 튀어나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봐야 가상의 존재인 그는 역시 가상의 여자밖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앞뒤가 들어맞는 기분이다. 앞뒤가 들어맞아서 어쩔 거냐 싶시도 하지만.


p. 280
사회에 나온 뒤 하고 싶은 운동을 내 페이스에 맞춰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내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얼마나 원했는지 알았다. 지금껏 귀중한 시간을 많이도 낭비해왔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외동이라는 점과 관계있는지도 모른다. 좋게 말하면 자립심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다. 스스로 한번 시스템을 정하면 성에 찰 때까지 철저히 지키지만, 도중에 남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면 기분이 상하고 만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기준보다 자발성을 존중한다. 이런 성격은 역시 학교 공부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 생각이 미친 것은 학교를 나오고 한참 지나서였다(나는 여러 가지에 생각이 미치는 데 남들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학교 다닐 때 일찌감치 그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을 테니까.

 

p. 279



때때로 길에서 학생들을 보면 저 가운데 학교생활이 맞지 않는 아이들도 제법 있겠거니 생각한다. 그들은 아마 그곳에서 내키지 않고 답답하고 괴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 터다. 나는 그들의 기분을 잘 안다. 가능하다면 (가능할 리 없지만 그런 곳에서 해방시켜 넓은 세계에서 자유로이 살게 해주고 싶다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물은 한 신문의 설문조사에서 는 '노력'이 압도적인 1위라고 한다. 나라면 망설임 없이 '자유'를 선택할텐데.

 

p.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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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유독 그 업계로 진출하는지는 모른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다.

어쨌거나 험담이 쉴새없이 오간다. 그것도 주로 그 자리에 없 는 사람에 대한 것-간단히 말해 뒷담화다. 술 마시러 오는 손님 대부분은 카운터 너머의 인간 따위 안중에 없다. 고로 인간의 본 모습. 겉과 속을 관찰하는 데 그만큼 훌륭한 환경도 없었다.

A와 B 둘이 술을 마시면 A와 B는 서로 칭찬하고, 그 자리에 없는 C의 험담을 한다. 그러다 C가 합류하면 이번에는 A와 B와 C가 D의 험담을 한다. 이윽고 B가 자리를 뜨면 이내 A와 C가 서로를 인정하고, B의 험담을 시작한다.

 

좀전까지 사이좋게 술마시던 사람을 두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여간 재능이라고는 없는 녀석이야. 처세술이 전부지" "변변한 글도 못 쓰면서 불이나 저지르고 하며 통렬히 매도한다. 처음에는 듣다가 '대체 뭐지?' 하고 아연실색했지만, 조금 지나자 '이건 일종의 인사말 같은 거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일이 신경쓰다가는 정말이 지 못해먹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고 누구 앞에서나 분명히 밝히는 사람도 없지 않다. 다만 그런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이었고 (게다가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대부분은 상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발언 내용을 대굴대굴 바꿔댔다. 신랄하고 구체적이고 하여간 끈덕진 험담들이다. 덕분에 이른바 문단 술자리에는 밤이 깊도록 '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리를 떴다가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서다. '이거 굉장한 세계구나' 싶어 진심으로 감탄했다. 장차 나 자신이 그런 세계에 들어 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후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됐고, 결국 가게를 그만 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벌써 십오 년쯤 지난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카운터 안에서 세상을 바라봤던 칠 년의 경험은 작가인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철저히 배우고 익혔다. 어설프게 칭찬받을 바에야 차라리 욕을 먹는 게 낫다'는 교훈도 그중 하나다. 비판받고 험담을 듣는 일이 물론 즐겁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속는 건 아니다.


p. 317
말씀대로 분명히 등재돼 있더군요. 저는 일본에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별책 리더스 플러스를 갖고 있지 않은 까닭에 거기까지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은 본권과 별책이 같이 들어간 리더스 CD rom 판을 씁니다. 콤팩트하고 정보량이 풍부해 여행에 가져가기도 꽤 편리하죠. 저것 말고도 American Heritage』라는 영영사전을 컴퓨터에 넣어뒀습니다. 하드디스크에 전부 들어가니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지만 일일이 디스크를 갈아 끼울 필요가 없어 잠깐씩 찾아볼 때 편리합니다.

다만 절대 꼬투리 잡는 건 아닌데, 일본의 사전은 대체로 경쟁사의 속셈을 흘끔거리면서 저쪽이 넣는다면 우리도 넣어야지' 하는 식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가는 결국 단점까지 닮은꼴인 사전만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좀 재미없다. 사전이란 것에는 어느 정도 '남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꿋꿋한 구석이 있으면 좋겠다. 서로 눈치를 보기보다 의외성과 독자성이 있는 예문을 넣어주면 좋겠다. 이를테면 (어디까지 나 예지만) might as well의 예문은 어느 사전이건 거의 판박이 같단 말이죠.

 

p. 145 : 장수 고양이의 비밀 : 잠꼬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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