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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독서정리

스무 번째 책 : 아버지에게 갔었어 - 신경숙

by 마파람94 2021. 6. 3.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들었습니다.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입니다. 소설 속의 여러 묘사가 머릿속에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가슴 짠한 감동이 밀려오는 내용들도 곳곳에 나타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생각해서 불러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한편으로는 지금 50대 중반~ 60대 중반 인 분들의 관점에서 아버지에 대한 소설 속 이야기가 더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속의 아버지가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과 살아온 궤적을 투영해 볼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게 지금의 20대~30대 세대들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라고 상상을 해봅니다.

 

 

 

93

여러 역자가 나누어 번역한 것도 아닌데 내 글은 빈틈이 많아 읽을 때마다 수정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바로잡아놓으면 이전보다 더 이게 아닌데...… 싶었다. 책으로 나온 이후에도 나는 내 글을 수정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할 뻔했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 고,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채 쏟아져 나온 비탄과 차마 나를 다 내려놓지 못해서 발생한 남의 탓과 무엇과도 연대하지 못해 고립된 개인적인 원망들, 차마 없애지 못하고 파일을 따로 만들어 저장해 놓은 맥락이 닿지 않은 메모들, 삭제도 수정도 하지 못한 채 파일을 만들어 저장해놓으니 새로 시작할 수가 없었다. 저장해놓은 파일 속의 부서진 글들을 불러와 매일 다시 읽어보는 일, 나는 모두 버리고 새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바뀌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파일 속의 글을 불러와 조금씩 고치는 일로 시간을 보냈는지도 큰 줄기는 손도 대지 못하고 '을'을 '은'으로 '그'를 '당신'으로 '들판'을 '벌판'으로 수정하면서 그러나 그럴수록 절실히 깨달을 뿐이었다. 차마 버리지 못해 저장해놓은 깨진 것들을 바닥까지 비워내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조차 없다는 두려움에 눈꺼풀이 떨렸다.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158

국자에 달고나를 만들어 먹었을까?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는 없으나 아버지를 속였다는 죄책감은 마음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 거짓말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아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버지에게 수업 준비물이나 숙제를 핑계 삼아 지어낸 거짓말이었다는 생각까지 보태지며 죄책감은 점점 무게를 더해갔다.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내 마음에 대 해 털어놓았더니 친구는 나에게 참 순진하다고 했다. 뜻밖의 반응이라 응? 했더니 왜 아버지가 너의 거짓말을 몰랐을 것이라 여기는 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알면서도 돈을 준 거라고? 나로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속지 않았다는 것이 친구의 말이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그렇게 속는 척해줄 뿐 속지 않는다고 아버지들이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급기야 친구는 속는 척해주는게 아버지들의 역할이라고까지 했다. 친구의 말처럼 아버지가 속은 게 아니라고 해서 내가 아버지를 속이지 않은 게 될 수는 없음에도 묘하게 위로가 되기는 했다.

아버지가 직접 만든 나무궤짝엔 경험까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열쇠를 채울 수 있게 자물통을 걸 수 있는 자리도 여전했다. 이게 여기에 있었네. 시간의 풍파 속에서 거무튀튀해진 나무궤짝 뚜껑 을 얻었다. 맨 위에 자이 올려져 있고 그 아래에 편지 묶음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가게를 완전히 집은 후로는 행방이 묘연했던 나무궤짝


 

166

이곳은 먼 곳이지만 당분간 이곳이 제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제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할 테니 두 분 부모님께서도 그곳에서 전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지내주시면 저 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가득하지만 오늘은 이만 쓰겠습니다.

배송을 맡을 업무실에 지금 이 편지를 가져다줘야 내일 떠나는 비행기에 실릴 것입니다. 매주 이렇게 제가 편지를 쓰겠습니다. 아버지께선 답장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편지로 인해서 제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시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그럼 이만 총총·……

1989년 4월 9일

아들 올림

P.S. 아, 아버지.

이 나라 이름이 리비아라고 말씀드렸지요? '바다 중심'이란 뜻 이라고 그저께 처음 만난 동료가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바다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근사하지요?

리비아가 바다 중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는가? 나는 편지 마지막에 아버지, 근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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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하면서도 현이와 셋째를 분가시킬 만큼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아내도 동생 많은 시골 출신의 장녀라 결혼 후에도 동생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이해해주었습니다.

아버지, 제게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때 아버지가 소를 살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으로 동생들 학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빠져나온 것입니다. 그깟 소 몇마리로 말입니다. 제게 이런 속셈이 있었다는 걸 아버지가 아셨을 턱이 없겠지요.

아버지.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제 아버지였기 때문 입니다. J 시에서 살 때 사람들이 가끔 제가 뉘 집 자식인지 알고 싶어 아버지 존함을 물을 때가 있었는데 아버지 함자를 대면 모두들 아 하면서 아버지를 대하듯이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아버지 함자를 댈 때면 바로 친절해지고 다정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제 아버지라 항상 뿌듯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이니 소를 길러 충분히 건사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텃밭에 우사까지 따로 지으시고 정부 지원을 받아 소를 수십 마리로 늘리고 아침저녁으로 쇠스랑을 들거나 장화를 신고 허리를 굽혀 소들이 내뿜는 더운 입김과 소들이 싸놓은 똥 속서 일하시는 모습을 뵙고 돌아올 때면 소를 기르도록 권유한 저 때문에 아버지가 저 고생인가 싶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278

너거 아버지한테 혼자 있을 때 밥 지어먹는 법을 익히게 했어야는디. 옛날처럼 밥 짓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쌀을 씻어 물만 맞춰서 메뉴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디 그거를 알려주지 못했네. 토마토 주스 갈아먹는 법도 좀 일러주고 할 것인데 그러기 싫더라. 일러드렸으면 금방 익혔을 것이다.

지난날에 내가 너그 아버지한테 놀란 게 두 가지 있는디 하나가 경운기를 사왔을 때다. 부속품들이 다 따로따로라 그걸 다 조립을 해야 해서 처음엔 대체 저걸 어쩌려고 사왔나 근심거리였는디 너그 아버지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거기에 앉어서 설명서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더니 한나절 만에 경운기를 다 조립하고는 나를 부르면서 나와보라고 하더라. 크게 표시는 안했지마는 솔직히 그때 놀랐어야. 몸체 따로 바퀴 따로 뒤에 물건 싣는 것 다 따로따로인데 그걸 들여다보고 틀렸으면 다시 하고 또 들여다보고 하더니 종내는 떡하니 튼튼한 경운기를 조립해내더라. 깜짝 놀랐고나, 저이한테 저런 기술이 있었네. 싶은 것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뭐 맞추는 것을 전혀 못하잖여. 하다못해 장항아리 줄 세우는 것도 나는 반듯하게 못해서 줄 안 맞추고 여기저기 둥글게 세워두잖여. 뚜껑을 닫아도 내가 닫으면 뭔지 뼈틀어진 느낌이니 원. 나는 살면서 너그 아버지가 뭔가 못 미더우면 그때 부속품들을 다 연결해서 버젓하게 경운기를 조립해놓고 나를 부르던 때를 생각한다. 그뿐이냐. 그때까지 나는 너그 아버지가 경운기를 운전하는 걸 본 적이 없는디 책을 보고는 이리해보고 저리해보더니만 얼마 지나지 않아...


304

작가이니 복자기와 계수 단풍 드는 거는 꼭 보시오. 여기가 아니더라도 말이오. 몸이 이 모양이라 시간 보내는 라고 읽는 거 듣는 거는 할 만큼 했다고 여기는데 어느 책에서도 복자기와 계수나무 단풍 들 때 모습을 묘사한 걸 못 읽었소. 글 쓰는 이들이 참 게으르구나 생각했소. 복자기 단풍 들 때는 참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운신을 못하니 사계절 중에 여름 나기가 젤 힘들어서 그만 죽고 싶으면 맹속으로 복자기 단풍 든 거나 한번 더 보고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아름답지 나뭇잎의 붉은빛이 새 새끼 눈처럼 반짝반짝. 다른 나무들 단풍 든 거랑은 비할 수가 없소 작가이니 복자기 단풍 들 때 일부러라도 숲에 가보시오. 작가 아니라도 단풍 들 때 복자기 자태며 계수나무가 뿜어내는 그 달콤한 냄새를 맡어보면 그 순간만이라도 매인 것에서 놓여 날 것이오, 복자기 단풍 든 자태는 먼디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눈부시게 광이 나거든 내가 복자기다 하고선 뽐을 내고 서 있거든 야지다고들 하지. 야발이 무슨 뜻이냐고? 작가가 그걸 나한티 묻네? 사전적 의미로야 얄밉고 되바라지다요. 자기를 말할 때 야 발지다고 하는 건 워낙 잘나서 얄밉다는 뜻이겠지. 그 옆 나무는 계수디 어디서나 잘 자라고 생장이 빠르오. 오색으로 단풍 들 때 빼어나게 아름답지. 계수나무 자태가 눈에 띄기 한참 전부터 냄새가 맡아지오. 그 냄새를 뭐라 해야 할까 모르겠소. 작가라니까 꼭 맡아보고 표현해보시오. 잎사귀에 단풍 들면서 다디단 냄새가 주 변으로 스미는데 이 냄새가 어디서 나나 하고 단내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계수나무 앞에 머물게 되지.


 

312

내게 실어다주었지. 도마를 처음 만들던 날이 생각나네. 물이 닿으면 편백 향이 더 진해져서 물에 넣어뒀다가 꺼내 머리맡에 두기도 했는데 나는 여기에 앉아 편백나무 판을 자르고 다듬으며 한세월을 보냈네. 자네 아버지가 내가 만든 것을 팔 수 있게 읍내 가게하고도 연결을 시켜주었네. 시작은 도마였는데 내가 재미를 붙이자 다른 것들도 만들 수 있게 살펴주었지. 경추 목침 같은 걸 만들어놓으면 자네 아버지가 챙겨서 읍내 가게에 가져다주고 이 것들이 팔리면 돈을 받아서 내게 가져다주곤 했어. 편백은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요, 그건 좋은데 잘 잘리지도 않아서 가공하기도 쉽지 않지. 그래서 목재 귀할 때도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았는데 지금은 편백이 자랑이지. 살균작용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뒤에 편백을 아주 귀히 알더군. 세상의 기준은 이처럼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소. 필요에 따라 변화하지.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러니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다시 시작된 전투에서 우리 쪽이 크게 이겼네. 워낙 화력이 월등 했거든. 동료 시신조차 버려두고 빨치산 주력이 완전히 패퇴해선 갈재를 포기하고 옆으로 밀려난 게 뚜렷이 드러났지. 부대원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도 등등했어. 산속에서 닭을 삶고 주먹밥을 만들고 술도 돌렸으니까. 음식을 그리 먹을 수 있는 날은 드물었지. 나는 숲 속에 숨어 있는 자네 아버지가 생각나서 내 몫의 닭고기와 주먹밥을 숨겨서 나왔소, 배가 고플 것이라 얼른 주고 돌아오려 했는데 자네 아버지가 있는 곳에 닿기도 전에 음식을 훔치려고 ..


321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까. 그들의 유서를 읽은 후에 나는 신문 읽는 일보다 자네 아버지가 가져오는 책들을 읽는 일이 더 흥미로워졌어. 책 읽는 일이 내 앞에 당도한 막막한 시간 들을 밀어내주더군. 자네 집 작은방에 있다는 책장은 본 적이 없지만 거기에 꽂힌 책들은 내가 다 읽었네. 덕분에 이 시골 마을에서 내가 한 시절 잘 지냈네. 그 인사를 이렇게 할 수 있게 되다니. 궁금한 게 있는데 낚시하는 법, 새 기르는 법…….. 자네는 그런 책을 왜 읽었는가? 한 번은 자네 아버지가 가져온 책 박스에서 그런 책들이 쏟아져 나오더군, 자라 키우는 법을 쓴 책도 있었네. 그 책들을 나도 읽어보았지. 유독 그런 책에는 자네가 그어놓은 밑줄이 많았어. 여기에 줄을 그어났을까? 한참을 생각하며 읽어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더군.

응?

소설을 쓸 때 필요해서 읽은 책들이었다고?

그래? 아………… 그렇다면 이제야 알겠군. 자네가 쓴 책도 읽었는 데 가끔 여기저기 틀린 곳이 있어서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될 때가 있었네. 자네가 쓴 초기작으로 기억되는데 백합 씨를 뿌리는 장면이 나왔네. 백합은 구근이네. 구근은 심는 것이지 뿌리는 씨앗이 아니야. 지적을 하려는 게 아니라 책을 읽다가 그런 대목이 눈에 띄면 읽는 맛이 줄어들지. 자네가 백합을 좋아할 뿐 그걸 길러본 적은 없구나 싶었네, 백합에 대해 쓰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그럼 자라가 등장하는 소설도 있는 모양이지? 어쨌거나 책을 읽는 시간에 나는 대체로 마음이 안정되곤 했지


 

 

322

아들일 수 있었다고 하면 이해하겠나? 책을 통해 인간을 알게 되었지. 얼마나 나약하고 또 얼마나 강한지를 말이야. 한없이 선하고 끝간데 없이 폭력적이지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고 불행과 대치하며 한 생을 살다 간 사람들은 자취를 남기네. 모진 상황들을 견뎌낸, 흔적 말이야. 내가 책을 읽는 일은 그 흔적 찾기였는지도 모르겠어.

요즘은 눈이 아파서 책을 못읽네. 최근에 겨우 읽은 것은 피아 니스트 백건우의 귀국 인터뷰네. 파리에 거주하는 그는 이번에 슈만을 연주하러 귀국했다고 하더군. 나는 슈만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에 따르면 슈만은 아주 복잡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했어. 인생에 쓰라림이 가득했던 작곡가라고, 젊은 날엔 그런 슈만의 인생이 이해되지 않아 그의 곡을 연주하는 걸 꺼렸다고. 그런데 지금은 슈만이 말년에 스스로 짐을 싸서 정신병원으로 들어간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더군. 나는 그 대목을 여러 번 읽었네. 스스로 짐을 싸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면서 뒤늦게 슈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그는 혼자였네 곁에 늘 께 있던 아내가 보이지 않았어. 어느 연주여행이든 함께했던 아내 없이 그가 혼자 있더군. 내가 자유롭다면 말일세. 백건우의 슈만 연 주를 들으러 가고 싶은 욕구가 생겼네. 그래도 아직은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갈 수가 없군. 하긴 눈이 이리되었는데 귀 라고 멀쩡하겠나, 곧 들을 수도 없게 되겠지. 괜찮네. 잘 살았다고 는 못해도 이만하면 잘 견뎌왔다고는 생각해. 이 생각에 이르기까지 고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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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얘기를 해줬으니 내 부탁도 하나 들어주겠나? 자네가 시에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자네 아버지에게 들었네. 자네를 보고 달려오던 딸을 먼저 보냈다고.………… 자네 아버지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고 비통해했네. 언젠가 자네의 첫 책을 읽은 적이 있어. 내용을 다 잊었는데 하나는 생각나는군. 삶에는 기습이 있다. 라는 문장 말일세. 그걸 읽다가 책 앞장을 펴봤어. 젊은 자네가 입을 꽉 다물고 저쪽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이런 문장을 쓰나 싶어서 말이네.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 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게 인간 아닌가. 자네 아버지는 자네 옆에 그저 있어주고라도 싶은데 자네가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며 고통스러워했네. 자네가 죽은 사람처럼 기척이 없다고 애태웠지. 삶은 삶을 알아보네. 자네가 이 집에 들어섰을 때 알았네. 자네는 이미 한번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살아야 하니 자네도 힘겹겠네만, 사람으로는 내 인생의 하나뿐인 동무가 자네 아버지네. 아버지가 자네 옆에 있게 해주소, 힘든 것도 같이 보고 별도 찍고 열매도 줍고 눈도 쓸고 그러소, 자네 얘기도 하고 아버지 얘기도 좀 들어줘. 달리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부탁이 하나 더 있어. 솔직히 말해보게. 



그에 대해서 말하기 3

 

무슨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말을 안 하나? 내게서 나는 냄새라고 여긴 건가? 음, 내가 냄새로 이루어지긴 했을 터. 지금 자네가 서 있는 그 복자기 나무 말고 뒤으로 돌기 전에 서 있는 저 나무……… 보이는가? 저게 편백이네. 그 나무 밑에 좀 가보게 바탕이 노랑이고 등에 흰 얼룩무늬가 진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을 것이네. 함께 살던 내동무였는데 저리된지 며 칠 되었네. 저 숲을 지나오고 담을 넘고 마당을 가로지르고 내 무릎 가까이까지 와 기척을 내던 유일한 숨이었는데 먼저 갔군 들려준 이야기 값으로 내 고양이를 좀 묻어주게. 그대로 두면 구더기가 꼬일 수 있으니....

인간이든 동물이든 죽은 다음엔 짓무르고 분해되는 육체만 남을 뿐이지. 나는 평생 그 잊을 수 없는 냄새에 시달리며 살고 있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고 끈질 기게 내 뒤를, 내 곁을 따라다니는 그 지긋지긋한 냄새 ・・・・・ … 그러니 저 가엾은 생명을 묻어주고 가게나,


338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저한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셨어요.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하고 가까이 갔더니 환자복 주머니에 서 수표 한장을 꺼내서 제 손에 꼬옥 쥐여주셨어요. 제가 당황해서 할아버지 저도 돈 벌어요. 했더니 할아버지가 다른 애들은 못 주고 너만 주는 거니 암말 말고 요긴한데 써라, 하시고는 병원 침상으로 올라가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눈을 꾹 감으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제가 뭐라고 할까 봐 눈을 뜨질 않으시는 거예요. 병원에서 나와 할아버지가 주신 것을 펴보니 1시 농협에서 발행한 백만 원짜리 수표였어요. 제가 결혼을 한다니까 병원에 입원하려고 서울 오시는 길인데도 농협에 가서 수표를 끊으신 거예요. 저를 주려고요. 지금도 할아버지는 제가 돈 번다고 말씀드려도 저만 보면 조금이라도 돈을 주시려고 해요. 제가 자존심 상할 수도 있다고 여기시는지 아무도 모르게 주시려고 할아버지 나름대로 작전을 펴시는데 그 노력이 제겐 다 보여요.

고모

엊그저께 제가 둘째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내드렸더니 고모가 표정이 왜 그러냐? 문자로 물으셨잖아요. 뒤늦게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요즘 제 마음이 그 사진에 찍혀 있었어요. 두 아이 아버지가 된 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더군요. 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고 모두들 갓난아이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고모는 저를 봤구나, 싶어서 제 표정이 부끄러워졌어요. 


 

367

고장나서요! 외치고는 페달을 굴려 쌩하니 사라졌다. 나는 학생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한동안 서 있었다. 오래전에 나도 이 고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중학교에 다녔다는 생각. 그때가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무릎에 힘이 들어갔다. 넘어질 때마다 하필 꼭 무 이 깨졌지. 살갗이 찢긴 자리에 맺히던 핏방울, 깨진 무릎은 빨리 낫지 않고 염증이 생기곤 했다. 아물어가던 염증의 더께는 물만 닿으면 다시 떨어져 나가곤 했다.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던 아버지 손 길도 떠올랐다.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려는 나에게 한번 배워놓으면 평생을 탈 수 있다고 다독거리던 목소리도 몸으로 익혀서일까. 아버지 말처럼 그때 자전거 타기를 배워둔 덕에 나는 지금까지도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오래전 갓 배운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던 J시 중학교의 교문 위치가 바뀌어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교문 자리에 서서 학교 안을 기웃거리다가 돌아섰다. 음악실까지 이어지는 긴 화단이 있고 교무실 앞에는 종이 매달려 있어 수업 시작과 끝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그때마다 종을 치던 사람은 누구였을지. 이 고장을 떠나서도 어디에서든 종소리를 들으면 이곳에서 들었던 종소리가 생각나곤 했다. 프라하의 카를 다리 건너에 있던 성당, 이름은 잊었지만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을 시디시게 만들었던 그 성당의 종소리를 들을 때도 작은 고장의 중학교에서 들었던 수업 종소리가 떠오르곤 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나는 붉은 벽돌에 매달려 있던 그 종이 아직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의 자전거를 세워두었던 본관 뒤쪽 등나무가 아직도 그대로인지

 

 

376

생각하지 말고 오랜만에 나랑 C시로 놀러 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어때요, 물었다. 대답을 안 하는 것으로 퉁치는 아버지에게 틈만 나면 C시에 다녀오자고 하니 아버지는 마지못해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가겠다고 했다.

- 알리면 왜 안 되는데 아버지?

- 걱정 끼치기 싫다.

그런 아버지에게 내가 뭐랄 수는 없었다. 나 또한 걱정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그동안 아버지가 내 집에 오는 것도 막았던 사람이 었으니까.

아버지와 함께 간 C시의 거리는 몰라보게 변해 있어서 시외버스에서 내린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자 아버지가 저기서 택시를 타고 가자며 앞장을 섰다. 내가 택시 안에서 변화한 C시의 거리를 내다보며 막막한 표정을 짓자 아버지가 저기 보이는 것이 전동성당이고, 저기가 새로 생긴 한옥마을이라고 일러주었다. C시를 설명해주는 아버지는 정말 나를 데리고 놀러 가는 사람 같기도 했다. 예약을 하고 왔는데도 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수면장애 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 전에 아버지의 상황과 병력을 세밀히 적어야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설문지의 간 단한 내용을 작성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자는 사람이나 알 수 있는 내용도 있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잠 습관에 대해 묻다가 나는 아득해지곤 했다. 엄마의 기억에 의하면 아버지가 밤에 자다가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기 시작한 지는 삼십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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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만 갖게 하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았는가. 미안하고 감사했네. 정다래의 그늘이 얼마나 넣었는지를 그때마다 말로 하지 못한 것 이 후회되네. 내가 자주 대꾸를 안 하는 것으로 화를 돋운거 잘못 했네. 당신은 내가 무시해서 그린다 했지만 아니네. 젊은 날 더 많이 옆에 있어주지 못한 일을 돌이킬 수 없어 괴로워 그런 거였으니 용서하소. 나는 아버지 말을 받아 적다가 움찔했다. 내가 어떤 일에 "마음이 옹졸해져서 쓰기를 주저했던 말들이 메마른 아버지 입에서 풍부하게 느릿느릿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내게는 황송한 내 자식 들이라고도 했으나 나는 차마 그 말은 적지 못했다. 무릎 위의 노트북이 자꾸 미끄러지려고 해 나는 노트북을 아버지 침대에 올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 자판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더 하고 싶은지 방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우고 기다렸다. 아버지가 뭐라고 낮게 웅얼거렸으나 마당의 바람 소리가 세지고 빗소리가 훅 들이치 고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섞여버렸다. 뒷마당의 사위어가는 머 윗 잎들이 거칠게 한쪽으로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어렵게 무슨 말인가를 했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예? 나는 침대 위에 올려놓은 노트북 자판에 두 손을 내려놓은 채 아버지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뭐라셨어요? 내가 아버지의 말을 받아적는 일에 이렇게 간절해져 있을 줄이야. 불현듯이 나는 깨달았다. 내가 딸에게 아버지 얘기를 전하려고 쓰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옆 마당에 떨어진 감나무 잎새들이 비에 쓸리는 중인가 보았다. 빗소리에 수수수 나뭇잎 쓸리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비에 진 나뭇잎들이 마루 근처까지 쏠려왔을지도 모를 일 이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아버지가 힘을 내서 메마른 입술을 달 싹였다.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 냈어야라고


 

422 : 작가의 말 

그 쇠 얼굴을 밟고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저 안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이 그 작품을 체험하는 일이었어요. 많은 기록과 영화와 책과 증언과 예술작품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그들이 어떤 처절한 상황에 놓였는지를 절감해왔으나 그 상징인 낙엽을 제가 직접 체험하는 일은 그와는 또 다르더군요. 각자 다른 모양으로 일그러진 쇠 얼굴 이만개 사이에 첫발을 내디딜 때 울리던 찌그러, 소리가 지금도 귓결에 남아 있습니다. 앞에 걸어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발걸음이 남긴 찌그럭 소리까지 보태져서 곧 그곳은 쩌그럭 쩌그럭 비명 같은 공명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발에 아무리 힘을 빼고 걸어도 걸음을 뗄 때마다 무거운 쇠 얼굴들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들이 귀에 쌓였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요. 그만 돌아가려고 하니 이미 밟고 지나온 얼굴들이 뒤에 가득했습니다. 멈칫거리고 있는 것조차 제 발밑의 얼굴에 가해를 더하는 격이라 얼른 발을 뗐던 순간들. 그렇게 찌그럭 찌그럭 소리를 들으며 저 너머까지 걸어갔다 왔던 그 해 저물녘………… 고국의 제 책상으로 돌아가 아버지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통에 쫓기며 비명 소리를 내는 듯한 쇠 얼굴 중의 한 얼굴이 제 아버지 얼굴 같았 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와 그때 찍어둔 사진과 동영상을 가끔 들여다보았습니다. 한국 농민 여성사 천주교 전주 교구사 보천교와 한국의 신종 교, 정읍 사상사 등을 곁에 두고 읽기도 했습니다. 

 

423 : 작가의 말 

두 사람이 같이 운다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했지요. 작품이 시작된 이후로는 남도일보 최혁 주필의 전라도 역사이야기, 외교통상부의 세계 각국 편람, 구슬땀 쉼터 블로그와 어떤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대한민국 경찰청 블로그를 자주 클릭했습니다. 그 기록들은 새로운 여러 실마리를 던져 주기도 하고 제가 그동안 옅게 인식하고 있던 부분들을 재확인 시키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연재 중에는 매번 이메일을 보내준 분, 마친 후에는 참 꼼꼼히 다시 읽어준 두 친구, 그리고 여러 계절을 함께한 에디터 지영씨, 고맙습니다.

작품을 쓰다 보면 특히 장편을 쓰다보면 뜻밖의 작중 인물이 가르 침을 주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이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치른 '박무룽' 씨가 그랬습니다. 서로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전쟁 후에 이들은 아주 오래 소식을 끊고 지내지만 자식 일로 다시 재회한 후론 일생 동안 서로의 곁을 챙기는 벗이 됩니다. 박무릉 씨는 어느날 소설가인 저에게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삶이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숨을 받은 자의 임무이기도 하다는 것, 그 곁에 읽는 것과 듣는 것과 보는 것이 있기도 하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

지금은 여기서 아버지와 작별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 다. 우리는 같은 참나무 밑에 떨어진 잎사귀들 아닐는지요. 교정지를 들여다보다가 마지막으로 손본 것은 5장의 소제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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