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다섯 번째 책 그리고 이번 달 세 번째 책을 읽었습니다. 한두 시간 만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도 이런 책을 한번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살면서 일어난 일상의 가족 간의 이야기를 의미 부여하여 재미있게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p. 49
잘하는 편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몸에 좋은 약이라고, 건강에 좋은 거라고, 비싼 거라고 챙겨주면, 장롱에 넣어놓고 손 여사 몰래 혼자 챙겨 먹을 정도로, 아직까지 생에 대한 애착도 강하다.
손 여사가 말하길, 아버지는 젊은 시절 농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논두렁 어딘가에 앉아 농약을 마시는 아버지를 상상했다. 거꾸로 세운 농약병을 입에 붙이고 있는 모습을. 파란 나팔 청바지를 입은 아버지가 게게 풀린 눈으로 세상을 등지려 하는 그 모습을 그려봤다. 마치 내 기억인 것처럼 생생하다. 그때 아버지의 충동이 내 몸에도 스며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검은 피부에, 각진 턱을 가졌고 손과 발은 두툼하다. 발은 평발에 가깝다.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여러번 말한 적이 있었는데, 언제나 군대 이야기를 할 때면 요리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보아, 특수부대...
p. 67 : 전교조 선생님
선생님은 전국 교직원노동조합 출범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해직되었다. 선생님은 한 학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선생님의 마지막 학생이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교문을 나서는 선생님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해하기에 '전교조'라는 단어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학교에 남은 선생님들은 어떠한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키르케고르는 산자와 죽은자의 관계는 산자에 의해서 변한다고 했다. 죽은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산 자의 마음이 변하고, 태도가 변하면 그 관계 역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황순원 작가의 마지막 절을 읽으며 그 배경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분이 친구를 대했던 마음을 더없이 소중하게 되새기게 되었다.
p. 110
아버지가 클럽에 들어와 있었다. 아버지는 클럽 관장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기에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는데, 안에서 듣기에도 우렁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가 어두워지고 있어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대화할 때도 종종 소리를 치는 것처럼 커졌다. 나에게 어떤 특혜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엔 클럽 안에 있는 모두가 들을 만큼 힘이 실려 있었다.
"우리 딸은 소설가요!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는 교수고! 그러니 좀 싸게 해줘야지."
이런 문장이 학생들의 소설 속에 있다면, 나는 좀 더 수정하라고 권했을지도 모른다. 생각 없이 대사를 쓰지 말라고.
하지만, 이건 아버지의 과잉된 마음이 투영된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실소를 머금을지라도, 딸에게는 단 하나라도 이익이 더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펼쳐놓은 세련되지 못한 속내였다. 너무 소중해서 지키고 싶은 것, 그래서 과한 마음이 체면 따위는 생각도 않게 하는 것.
p. 124 : 돈은 돌고 돌아 돈이다
손 여사도 교회에 나갔다. 권사라는 직함도 얻었다. 부부가 함께 나란히 교회에 나갔을 것 같지는 않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열성적으로 주일을 지키는 하나님 의 '종'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손 권사는 내게 밥을 먹자고 청해 왔다. 저녁 무렵 손 여사는 오리고기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고는 오리고기 대신 삼겹살을 시켜줬다.
손 여사는 그 당시 나의 돈벌이가 시원찮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글을 더 열심히 쓰기 위해 일을 줄인 것이었지만, 글도 변변치 못했고, 일도 생각보다 확 줄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였다.
고기를 먹고 나오며 손 여사가 말했다
p. 144
이제 그만하려고 했었다. 너무 지치기도 해서 문학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할 참이었다. 목동에서 작은 학원이나 교습소 같은 걸 차려서 잘 키워볼 요량이었다. 자신도 있었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게 수월하고 간단했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등단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다시 '미완의 봄' 속으로 들어가 창을 열고 세상을 보게 되었다. 김봄이 되어서.
내 이름 봄은 신록으로 찬란해지는 계절의 이름 봄이 아니라 '보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물론 '보다'와 '봄'은 따로 떨어진 단어가 아니다. 봄이 따뜻한 온기가 다가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따뜻해진 봄볕 가운데 만물이 생동하는 새 계절을 새롭게 보는 '새봄'을 봄의 근원으로 두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p. 151
오늘도 손 여사는 정부를 비판했다. 재산세가 얼마나 올랐는지 모른다고, 세금 때문에 죽게 생겼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없는 돈을 모아 땅을 산다.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언젠가는 오를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 삶에 반대한다. 미래에 성취될 이익 때문에 오늘을 저당잡혀 산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손 여사는 지금도 나에게 집을 사두라고 말한다. 오피 스텔 같은 거 어떠냐고 말이다. 매일이 다르게 오르는 걸 어찌 산단 말인가. 그런 꿈은 사실 손 여사 세대에서나 가능했던 것이었는데, 희망은 언제나 배신하기 마련이라는 냉소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시대가 되었는데 말이다.
p. 153 : 저마다 다른 하루의 속도(땅은 배신하지 않아)
손 여사는 못 하겠다고 하여 내가 대신 매일 아버지의 메마른 입 안에 거즈를 넣고 닦아주었다.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아버지를 할아버지로 확 늙어버리게 한 것 같아 죄스러웠다.
아버지가 퇴원을 하자 이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형제들 사이에서 오갔다. 남동생은 임플란트를 해야 하니, 지금부터라도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 일정 금액이 모이면 이를 해드리자고 했다.
난 반대했다. 하루라도 빨리 해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하루와 우리의 하루는 다르기 때문이다. 잘 씹고, 잘 삼키는 것이 사는 데 얼마나 중요한데.
우선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치과에 갔다. 견적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형제들에게 1백만 원씩 내라고 했고, 나머지는 내가 내겠다고 했다. 형제들 모두가 따라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치과 치료를 시작했다. 7백만 원 정도 결제했을 때,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 어르신들 임플란트 치료에 보조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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