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6독서정리

세 번째 책 : 경험의 종말

by 마파람94 2026. 2. 8.



세 번째 책 : 경험의 종말

우리는 자주 현상을 마주하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현상이 주는 편리함에 무의식이 매료된 것 같습니다. 은연중에 중독되어 절로 행동하게 되니까요.

책의 내용 중 무지개가 아름답게 드리워진 장면에서 오롯이 그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저마다 스마트폰 속을 들여다보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 순간의 금싸라기 같은 경험에 큰 손실이 일어난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지개를 경이롭게 만나는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리라 다짐해봅니다






얼굴이 가지는 힘

나는 대면 소통을 열렬히 지지한다. 다윈이 입증했듯이 우리 모두 그렇다. 진화 과정에서 서로의 얼굴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신체적 의사소통을 구성하는 여러 몸짓, 움직임, 자세, 표정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주된 요소다. 왜인지 우리는 신체의 신호를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역사를 살펴봐도 인간의 얼굴에는 힘이 있었다. 인간의 얼굴에 대한 경외심은 '외관 훼손'에 대한 거부감을 낳았다. 많은 문화권에서 베일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얼굴이 가진 힘 때문이다. 권력자는 틈날 때마다 자신의 초상화를 대중 앞에 내세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온갖 곳에 자신의 초상화를 두었고 로마 황제는 모든 동전에 자신의 얼굴을 새겼다. 《성경>의 <히브리서>는 공개적인 예배를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 경》전체에 걸쳐 신자들은 직접 대면해서 문제를 처리하라는 권고가 있다. "또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를 멸망시키시어 직접 갚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 없이 직접 갚으신다.*"4

신명기 7장 10절. "직접 갚으신다"는 영어로 "He will repay him to his face"다.

2장 대면 상호작용의 필요성 55

우리는 이런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16세기 수필가 미셸 드 몽테뉴는 이렇게 썼다. “연인들은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부탁하고, 감사하고, 비밀스러운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고, 모든 이야기를 한다. 눈으로 말이다.”18 눈뿐만이 아니다. 손, 머리, 어깨, 심지어 눈썹까지 이야기를 전한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의미 있는 언어, 배울 필요가 없고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언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전한다.”

이런 무언의 신호와 몸짓에 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 Edward T.Hall 은 “침묵의 언어 silent language”, 19 심리학자 앨버트 메레이비언은 “암 시적 커뮤니케이션 implicit communica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20 거리에서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지켜보던 찰스 다윈을 매료시킨 것도 바로 이 무언의 신호와 몸짓이었다. 여기에는 목소리의 높낮이, 크기, 억양과 같은 이른바 준언어 단서 paralanguage cues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촉각(접촉) 전략이 포함된다.

노련한 정치인들은 이 모든 도구를 유연하게 사용한다. 1957년 상원 다수당의 당 대표이던 린든 존슨이 찍은 사진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사진에서 존슨은 90세에 가까운 작은 체구의 시어도어 그린 상원의원에게 지나치게 붙어 있다. 바로 이 "존슨 방식 Johnson treat- ment" 때문에 그린은 책상에 등을 댄 상태이고, 존슨의 얼굴은 그린의 얼굴과 몇 센티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근접성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근접성이 드러내는 것은 뭘까?

62 경험의 멸종

이제 우리는 경험 보상 효과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대면 경험이 드물어지고 성급함이 개입하고 만족감이 떨어지면서 우리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매개된 경험에 더 깊이 빠져든다. 악순환은 끝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선천적 능력인 현실에서의 상호작용 능력은 저하된다. 고프먼은 말했다. “어떤 행동이 거짓이 되는 것은 새로운 거짓 루틴이 생겨서가 아니다. 변화한 상황에서도 기존에 유효했던 루틴을 계속 사용하기 때문이다. "58

대면 경험, 즉 실제 세계에서의 경험은 불쾌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냄새나는 남자가 옆에 앉아 있는 경험이 깨달음을 가져다줄리는 없다. 도덕군자인 척하는 사람이나 그런 경험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세계와의 이런 일상적인 만남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강화한다. 거기에 마음을 열어야 놀라움, 불쾌, 불편 그리고 뜻밖의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말했다.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59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즉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려면 그의 물리적 존재에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이런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2장 대면 상호작용의 필요성 87

키보드를 두드려서 단어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추상적이고 분리된' 방식이며, 이는 “교육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망엔은 생각한다. 종의 감소와 마찬가지로 기량도 점차 약화된다. 우리는 보통 비효율적인 낡은 도구(손 글씨)를 효율적이고 편리한 대안(키 보드 입력)으로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면 상호작용의 감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효율성의 대가로 학습 방식에서 치명적인 손실(특히 어린이의 경우)을 입었음을 깨닫지 못한다. 키보드는 마스터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이름조차 쓰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절대 진보의 본보기라 할 수 없다.

물성의 힘

글을 쓰는 물리적 행위는 손과 손가락은 물론 팔뚝의 기민성까지 요구한다. 붓이 깃펜을 대체하기 전에 작가들은 자기 손에 딱 맞는 펜을 만들기 위해 거위나 백조의 날개를 뒤져 깃털을 골랐다. 19 소설가 메리 고든은 손으로 글을 쓸 때의 수고로움 역시 글을 쓰는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저는 그 수고에 미덕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자체의 물성 때문이죠. 우선 글쓰기에는 뼈와 살, 펜과 종이라는 실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101

소설가 모신 하미드는 컴퓨터로 소설을 집필한다. 하지만 준비 작업을 할 때는 공책에 손으로 메모를 하면서 온라인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기술을 이용할 때 면 “기술은 나를 형성하고 구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계와 같은 일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도구에 따라 한계가 있다.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면 쉽고 효율적이다. 반면 한 손에 펜이나 연필을 들고 글을 쓰는 경험은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보통의 미국인은 분당 40 단어를 타이핑할 수 있지만 손으로 글을 쓸 때는 분당 13 단어밖에 못 쓴다. 캘리그라피스트 폴 안토니오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실제로 가르치는 것은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24

체화된 행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손으로 쓰는 속도는 현대 생활을 지배하는 도구들, 즉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정보를 처리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기기들과 알고리즘의 속도에 비해 엄청나게 느리다. 편리한 키보드는 우리를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훈련시킨다.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103

그림 그리기의 쇠퇴

손 글씨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그리는 그림도 신체와 정신을 연결해 준다. 수세기 동안 인간의 창의성을 정의해 온 연결 말이다. 사냥을 묘사한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동굴벽화는 수천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림이 인간 특유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한 일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기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림은 글을 읽고 쓰기 전에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주변에 있는 대상을 그리면서 크기, 비율, 가능성 등에 대해 배우는 것은 자신이 속한 구체적인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손 글씨가 그렇듯이 그림 그리기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건축과 같이 그림 그리기에 의존했던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까지 대부분의 건축학과 학생들은 손으로 도면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몇 년 만에 컴퓨터 지원 설계 computer- assisted design, CAD 소프트웨어가 이 분야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건축가들은 손으로는 모방하기 힘든 복잡한 혁신적 디자인을 실험했다. 컴퓨터는 필수적인 설계 도구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컴퓨터 켜는 법조차 알지 못했다던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이 기술의 얼리어답터가 되었다. 그는 한 공학 포럼에서 청중들에게 일화를 소개했다. “건물에 이중 곡선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105



과거 덩치가 크고 낯설게 느껴졌던 악기가 이제는 내 손의 연장 같았다. 나는 악기의 특성을 잘 알았다. 습한 남부 플로리다의 공기에 어떤 키가 달라붙는지, 계절에 따라 음의 높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건조한 겨울에는 반음을 어떻게 높이는지, 무더운 여름에는 반음을 어떻게 내리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광택제가 발린 단풍나무에 생긴 모든 흠집과 긁힌 자국을 알고 있었고 난로 연통처럼 생긴 윙 조인트를 아마도 수천 번은 보았을 것이다.

나와 악기의 관계는 물리적(촉각적)이고 감정적이었다. 그것은 '내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바순을 연주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연주할 때면 나는 모든 감각을 이용했다. 악기의 소리와 모습이 가장 중요했지만 조인트에 바른 코르크 그리스의 냄새, 리드가 혀에 닿을 때의 섬유질 맛, 연주할 때마다 들리는 은색 키의 삐걱거리는 소리 등이 나의 모든 감각을 자극했다. 그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전신으로 하는 경험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실체 있는 물건을 만들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면 우리는 자기 주도적으로 집중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34 도구를 다루거나 현을 활로 긋는 행위를 하면 이를 느끼는 동시에 행동하게 된다. 행동에 능숙해질수록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줄어든다. 세넷이 말하는 "상황적 인지situated cogni- tion”를 개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이런 수공예 작업에서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110 경험의 멸종


세넷은 <미국 공예 American Craft>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예는 노동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만드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입니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부츠 제작자 리 밀러가 100년 이상 된 도구로 부츠 한 켤레를 만드는 데에는 최대 40시간이 걸린다. 35 밀러는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자동화된 기계도 인간의 손만큼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한다. 주문 제작 부츠를 받기 위해 몇 년을 기꺼이 기다리는 그의 고객들도 같은 생각이다.

수공예품의 의미(“오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는 제작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 기술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기계는 정교한 물건을 똑같이 만들어낼지라도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말했다. “우리는 세상을 지각하고 경험할 뿐 아니라 분석하고 이해하는 존재다. 물건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아는 것이 그 물건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 영향을 준다. 또 그래야만 한다.”36 엘리트 계층에 속해야만 수제품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엣시 Etsy와 같은 플랫폼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수제품이 있다.

일부 비평가들은 수제품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가 구입하는 물건은 대개 대량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물건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폰을 만드는 중국 공장의 끔찍한 노동조건이 분노를 촉발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111

교사냐 기술이냐의 논쟁은 인간 대 로봇 논쟁의 확장이다. 온라인 교육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인적 접촉이 교육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하지만 온라인 교육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부분을 우려한다. 관리 이론가들의 말처럼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인간 상호작용의 가치는 쉽게 측정할 수 없다. UCLA 철학 교수인 패멀라 히에로니미는 온라인 학습이 더 우수하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교육에는 사람 간의 실시간 교류가 필요하다. 생각과 표현에 대한 경청, 이해, 교정, 흉내 내기, 제안, 부추김, 부정, 긍정, 비판이 있어야 한다."42

교사들에게는 10년 이상 정교한 미디어 및 기술과 함께 성장한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는 도전적인 과제가 주어졌다. 뇌 과학자이자 아동발달 학자인 디미트리 크리스타키스는 10년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기기로 인해 학생들은 일상에서 "초자연적” 수준의 자극에 길들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에 비하면 현실은 전혀 흥미롭지 않습니다."43

20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실제로 교사와 기술 간의 대결이 펼쳐졌다.“ 미국 전역의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약 5000만 명의 초중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원격 학습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결과는 엇갈렸다. 일부 학군은 신속하게 온라인 학습 모델로 전환해 대면 수업을 줌 수업으로 대체했다. 다른 학군은 학습 용 기술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16 경험의 멸종

<월스트리트 저널>이 요약했듯이 이 실험의 결과는 긍정적이지 않다. “학생, 교사, 학부모, 관리자의 평가는 이미 나왔다. 실패였다.”45 예비 조사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오리건에 본사를 둔 비영리 단체인 NWEA의 예측에 따르면, 2021년 가을 미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을 때보다 읽기는 약 70퍼센트, 수학은 50퍼센트 미만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습 기기를 사용하기 힘든 소수민족과 저소득층 아동의 학습 손실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원격 교육을 받을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차치하더라도 원격 교육은 많은 사람이 가정하던 이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이들이 유튜브 영상과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능숙하게 둘러보고 포트나이트 Fortnite 같은 비디오게임을 마스터하면서 익힌 기량은 온라인 학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원격 교육이 정치 지도자들과 기술 기업들에게 갖는 매력은 분명하다. 그들은 단기적인 문제(모두를 위한 줌 수업!)를 해결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동시에 향후 발생할 문제(학습 격차 등)에 대한 계획을 지연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술 억만장자들이 만든 재단과 기술 기업들은 장기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 없이 정책을 계속 수립할 수 있다.

학생들이 뒤처진다고 해도 기술에 책임을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금 부족이나 부모의 투자 부족을 탓할 뿐이다.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117

육체성의 소멸 앞에서

프랑스 페리고르 근처에는 16세기 수필가 미셸 드 몽테뉴의 집이 있다. 이 집의 서재 들보에는 〈전도서>의 한 구절을 의역한 문구 가 새겨져 있다.” “몸과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신의 일을 알 수 없다.” 몽테뉴는 몸의 감탄할 만한 면과 당혹스러운 면을 받아들였고(그의 수필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겪는 복부 팽만 증세에 대한 유쾌한 묘사를 담고 있다) 자신의 몸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비판했다. 몽테뉴는 몸이 자신을 이해하는데 중심이 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었다. 몸은 우리의 연약함을 상기시키고 자아의 우월감을 제한한다. 그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도 결국 제 엉덩이 위에 앉아 있을 뿐이다.”

몽테뉴의 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물리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훨씬 더 어려웠기 때문에 더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 시대에는 이런 겸손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기술 덕분에 우리에게 허락된 힘과 비교하면 우리가 매일 몸으로 하는 일상적인 과제들은 사소하고 하찮아 보인다. 신체적인 면에서는 신발 끈을 묶는 것보다 지구 반대편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기구와 도구는 중요한 면에서 우리 몸의 연장이다. 컴퓨터 과학자 요제프 바이첸바움이 그의 책 《컴퓨터 파워와 인간의 이성 Computer Power and Human Reason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도구를 사용할 때 그 도구의 여러 측면을 운동 감각적 습관과 지각적 습관의 형태로 내면화해야 한다.”52 도구는 몸의 일부가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 몸은 우리가 세상에서 길을 찾도록 돕는다. 프랑스 사회 학자 마르셀 모스는 “몸은 최초의 그리고 가장 자연스러운 기술적 대상"이라고 말했다. 53

120 경험의 멸종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는지 말해준다. 기꺼이 기다리는지 아닌지가 인내심 (과성급함)에 대한 우리의 감정, 게으름과 지루함 같은 것들에 대한 수용, 통제감에 대한 욕구를 드러낸다. 기다리는 방식은 침묵과 과묵함, 성찰과 공상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다. 오늘날에는 기다림의 경험이 어떻게 그리고 왜 변화했는지, 결과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있다. 기다림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은 독특하고, 기다림에 대처하는 방식은 우리의 선택이다. 하지만 기다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가족, 친구, 이웃, 지역사회, 심지어 더 넓은 정치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동물의 무분별한 본능이나 기계의 정교한 알고리즘과는 달리 우리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자연이나 엔지니어에 의해 기다림이 프로그래밍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작가 프랭크 파트노이는 “동물과 달리 우리는 멈춤으로써 프로그램된 반응을 무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다림의 방식이 우리를 다른 동물이나 기계와 구분해 주는 셈이다. 시인 W. H. 오든 W.H.Auden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인류의 충동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대죄는 성급함, 그것뿐인지도 모르겠다. 성급함 때문에 우리는 낙원에서 쫓겨났고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기다림은 언제나 삶의 경험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바뀌었다. 인내심이 미덕이라면 지금 우리는 그 미덕을 기꺼이 파괴하고 있다.

132 경험의 멸종

기다림은 일상의 이곳저곳에 존재한다. 기차를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고, 꽉 막힌 길이 뚫리기를 기다린다. 《오! 우리가 갈 곳 들!Oh! The Places You'll Go!》에서 닥터 수스는 어린 독자들에게 언젠가 냄비가 끓기를, 전화벨이 울리기를, 물고기가 입질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기다리는 곳”을 만나게 될 거라고 조언했다. 현 재 미국인은 매년 줄을 서고 기다리는 데 총 370억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추산된다. 6

일상적인 기다림의 경험은 매우 주관적이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기다린 10분은 식료품점에서 기다린 10분보다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기다림의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다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좌우하는 두 가지 요소를 발견했다. 바로 기다림 관련 정보의 양과 공정성이다. 설명되지 않은 기다림은 설명된 기다림보다 길게 느껴지고 불확실한 기다림은 확실한 기다림보다 길게 느껴진다. 디즈니월드의 모든 놀이기구 앞에 대기 시 간이 표시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옥이 연옥인 것은 그곳이 불편해서가 아니다. 연옥이 불편한 이유는 그곳에 언제까지 있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와 같은 외부 현실은 우리의 내부 인식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야코브 호닉은 한 실험에서 평균 길이의 식료품 계산대 줄에서 기다리고 있는 640명의 사람을 관찰하고 시간을 측정했다.' 그는 각각의 사람에게 얼마나 기다린 것 같은지 물어봤다. 그 결과, 사람들이 인식한 대기 시간은 실제보 다 약 30퍼센트 더 길었다. 소매업 컨설팅 업체인 엔비로셀 Envirosell의 조사 결과, 우리는 대기 시간의 처음 2~3분 동안만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3분째부터는 대기 시간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조금 더 참을성이 있다. 여성은 계산대 앞에서 3분 동안 줄을 섰다가 포기하는 반면, 남성은 2분 만에 포 기한다

134 경험의 멸종


줄을 선 소비자 들은 뒤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들은 뒤에 있는 많은 사람이 '저 사람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자신을 부러워할 거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공정성에 대한 인식은 대기 시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좌우된다. 라슨은 휴스턴 국제공항에서도 연구를 진행했다. 그곳은 수하물을 찾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승객들의 불평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의 대기 시간은 비행기에서 수하물 찾는 곳까지 걸어가는데 1분, 수하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 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평균 대기 시간이 업계 표준에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승객들은 대기 시간이 공정하지 못하다 고 느꼈을까? 그들의 인식이 왜곡된 것은 대부분의 대기 시간을 걷기와 같은 활동 대신 온전히 가방을 기다리는 데만 보냈기 때문이 다. 해법은 간단했다. 공항은 수하물 찾는 곳을 더 멀리 옮겼다. 승객들은 그곳까지 6분 정도를 걸어야 했지만 대신 가방을 기다리는 데에는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기 시간은 같았지만 '빈' 또는 낭비된 시간이라는 인식은 바뀌었다. 불만은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기다림과의 전쟁이 진화하면서 공정성의 원칙이 공격받고 있다. 이제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줄 서기 서비스 시장은 항상 있었다. 예를 들어, 워싱턴 D. C.의 줄서 기 서비스 업체인 라인스탠딩닷컴(linestanding.com)은 대신 줄을 서 서 의회 청문회와 미국 대법원 법정에 자리를 잡아주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136
경험의 멸종


성급하게 화가 난 사람들

8월의 어느 날 저녁 인디애나주 해먼드에 사는 23세의 몬트렐 모스는 여자 친구와 세 아이를 차에 태우고 저녁을 먹으러 호스슈 카지노로 가는 길이었다. 인디애나폴리스 대로에서 금색 쉐보레 밴이 모스의 차선으로 끼어들었다. 화가 난 모스는 물이 담긴 플라스틱 컵을 밴에 던졌다. 밴을 몰던 61세 운전자는 권총을 꺼내 모스를 쏘아 죽였다.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는 한 여성이 고속도로에서 자신을 추월하는 운전자에게 중지를 들어 보였다. 그 차의 누군가가 총을 꺼내어 이 여성의 차에 쏘았고 유치원에 가는 길이던 그녀의 여섯 살 난 아들이 죽었다.

138 경험의 멸종

노스캐롤라이나주 럼버턴에서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해변으로 가던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의 부부가 고속도로로 합류하려다가 다른 운전자를 화나게 했다. 상대 운전자는 그들의 차에 총을 쏘았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섯 아이의 엄마가 죽었다.

10년 전 워싱턴 D. C. 주민들을 대상으로 로드 레이지 road rage*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워싱턴 포스트>는 “다른 운전자에 대해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인정한 사람의 수가 2005년 이후 두 배로 증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운전자 10명 중 한 명 (젊은 운전자 여섯 명 중 한 명)이 로드 레이지를 느낀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나쁜 행동을 부각하는 데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실제보다 낮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로드 레이지는 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AAA 교통안전 재단에 따르면, 2019년 “운전자의 거의 80퍼센트가 지난 30일 동안 운전 중 적어도 한 번은 상당한 분노, 공격성, 로드 레이지를 표현했다"고 한다. 14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만 로드 레이지로 인해 446건의 충돌 사고가 발생했고 50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런 사고의 상당수는 총기와 관련된다.

*운전 중 다른 운전자에게 느끼는 분노

4장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 139


1000명 이상의 네덜란드인을 대상으로 행복과 휴가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휴가를 앞두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여행 전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54 즉 여행을 기대하는 사람이 여행 계획이 없는 사람보다 더 행복했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여행 후의 행복도는 휴가를 다녀온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개 휴가의 긍정적인 효과는 빠르게 사라졌다. 연구자들은 이런 차이를 설명하는 데 기대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에 관한 책을 읽고, 여행의 세부 사항을 정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즐거운 경험이었다. 결국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휴가 자체가 아니라 휴가에 대한 기대였다. 왜 우리는 그 즐거운 경험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기대를 아웃소싱하는 것은 가본 적이 없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 전에 엘프의 리뷰를 샅샅이 뒤지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우리는 놀라움을 좋아하지만 불쾌한 놀라움은 반기지 않는다. 기대는 놀라움의 가까운 친척이며, 기대가 즐거운 경험으로 이어질 때면 기다림이 즐거움을 한층 더 키운다. 그러나 기대와 놀라움이 실망으로 이어질 때면 우리는 거기에 할애한 시간을 낭비로 보는 경향이 있다.

4장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 163


인간은 모방에 능숙하다. 우리는 자연계에서 발견한 것, 같은 인간 사이에서 발견한 것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모방하며, 모방 후에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아이디어가 퍼져 나간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1970년대에 이 관행에 밈 mem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밈은 유전자 gene라는 단어에 ‘모방된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미메메 mimeme를 결합한 신조어다. 밈은 유전 물질이 계속 재생되어 전달되는 방식과 같이 사회적으로(바이러스처럼) 전달되는 아이디어를 말한다.

오늘날 '밈'이라는 단어는 약간 다른 것을 의미하며, 전적으로 온라인 문화에 기반을 둔다. 최근의 문화적 또는 정치적 사건을 아이러니하게 혹은 허무주의적으로, 때로는 터무니없이 해석한 것이 (“오케이, 부머*", 다크 브랜든 Dark Brandon **) 뚜렷한 이유 없이 인기를 얻어 인터넷 전반에 확산된다.


5장 감정 길들이기 173


설득 기술은 인간의 의도를 전복하고 인간의 감정을 조작하는 파괴적인 기술로 여겨지기 쉽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간에 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겠지만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신의 방식을 선택하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선택뿐만 아니라 감정과 느낌까지도 기술로 매개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기술을 만드는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예전의 텔레비전 광고가 그랬듯이 “세상 사람들에게 콜라를 사주고 싶어”라는 노래를 유쾌하게 흥얼거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이 목마를 때를 알고 싶어 한다. 그때를 알게 되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안토니 오가 말했듯이 당신은 “고양이가 우유를 핥듯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5장 감정 길들이기 209

물론 멀리 있는 곳이 항상 친근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에는 특별한 설렘이 있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오늘날 여행으로 불리는 것은 대개 관광이다. 관광은 여행과는 다르다. 애머스트대학 교의 문학 교수 일란 스타반스와 〈아비투스 Habitus〉의 편집자 조슈 아 엘리슨은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것, 방향 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관광은 안전하고 통제된 것, 미리 정해진 것이다.” 현대의 기술은 관광업의 이상적인 시녀다. 기술은 통제, 편의, 안전을 촉진하고 불안감의 완화를 약속한다. 기술은 모험이 빗나갈 경우의 안전망을 여행자의 손에 쥐여준다.

228 경험의 멸종

우리가 매개하기로 선택한 모든 쾌락이 그렇듯이 사진은 실제의 예측 불가능성과 번거로움보다 더 만족스러워 보인다. 기술이 실제 여행의 불편함 없이 여행에서 만들어지는 감각을 점점 더 능숙하게 불러일으킴에 따라 우리는 엘리자베스 비숍이 자신의 시 <여행의 질문 Questions of Travel >에서 제기한 의문과 마주하게 된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을 생각해 보라.
집에 머물면서 여기를 생각하는 것이 나았을까? 25

몇 년 전 나는 친구와 함께 워싱턴 D. C. 국립미술관에 앤디 워홀 전시회를 보러 갔다. 한 전시물 앞에 서 있을 때 한 여성이 휴대전화 카메라를 사람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무례하지는 않지만 단호한 태도로 우리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녀는 “죄송합니다"라고 빠르게 말하면서 사진을 찍고는 다음 전시물로 이동해 같은 일을 했다.

238

경험의 멸종

화면에서는 욕정이 예측 가능하고 반복할 수 있는 대리 쾌락으로 변형된다. 우리는 포토샵으로 수정하고, 필터를 적용하고, 육체적·정신적 결점을 제거해서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모습대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대신 여기에는 희생이 따른다. 매치닷컴(match. com)에는 희미해진 향수 냄새가 없고, 틴더의 알고리즘에는 연인의 피부가 주는 느낌이 없다.

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 253

지금은 포르노의 절반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실제 성관계를 잔뜩 꾸며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립 프로그래머들이 고글을 비롯한 증강현실 기기용으로 개발한 첫 번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이 거의 항상 관점 포르노 앱 point-of-view porn app *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인기 웹사이트 폰허브 PornHub에는 'VR 포르노' 라는 카테고리가 있을 정도다). 바르셀로나, 토론토, 모스크바, 토리노 등의 도시에서는 “섹스 인형 윤락 업소"에서 인간 매춘부보다 훨씬 저렴한 시간당 비용을 내고 정교한 기술로 구현된 섹스 인형을 대여할 수 있다. 1

도덕주의자들은 항상 음란물의 영향, 특히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걱정해 왔다. 반면 포르노가 성생활에 유익하다고 찬양하는 사람들도 있다. 포르노는 늘 인간 경험의 일부였다. 예를 들어보겠 다. 몬트리올대학교의 과학자들은 남성의 음란물 사용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지만 곧바로 장애에 직면했다. 교수 중 한 명이 말했다. “연구는 포르노를 소비한 적이 없는 20대를 찾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62

포르노에서 섹스가 이루어지는 방식에는 기계적인 면이 있다. 바로 그런 예측 가능성과 반복성이 포르노가 가진 매력의 본질이다. 오늘날 우리가 포르노를 소비하는 범위와 빈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여러 추정치를 통해 포르노 사이트의 트래픽이 아마

* 시청자의 관점에서 경험하도록 설계된 포르노 콘텐츠 유형 付

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 255

사진 안에 박제된 경험

어느 날 연극을 보러 워싱턴 D. C. 케네디 센터에 간 적이 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야외 테라스에 서 있었다. 그 순간 지나간 폭풍우의 잔재가 환상적인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무지개를 알아차리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한 남자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에게 사진을 보내고 있어! 내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말할 거야!"

이후 몇 분 동안 내가 지켜본 많은 사람이 무지개 자체를 보기보다는 하늘을 향한 화면을 통해 무지개를 보는데 더 빠져 있었다.

(무지개 너머에 있다는 재치 있는 말은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그저 잠깐 멈춰 섰을 뿐인 경험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정말 경험을 하고 있기는 한 걸까? 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67

. 폴 라로이드 카메라를 발명한 에드워드 랜드는 1974년에 이렇게 말했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사진을 찍고 찍히고, 그 사진을 공유하면………………집단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종류의 관계가 나타난다."" 사진, 동영상, 디지털 기술이 등장한 이래 시각적 경험의 범위가 놀랄 만큼 확장되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랜드가 새로운 종류의 관계를 만들 것이라고 이상화한 “공유”는 이제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그만의 기준을 따라야 하고 우리가 열심히 “공유"하는 이미지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야 한다. 즐거운 경험에 대한 기억은 우리에게는 일시적이며(클라우드의 디지털 비트), 다른 사람들(기술 회사, 정부)에게는 유용하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말이다. 과거에는 사적인 것이었던 즐거움이 이제는 공개되고, 우리는 가장 평범한 행위조차 대중에게 보여주려는 충동을 가진 듯하다. 다른 사람들이 박스에서 새로운 제품(대부분 고급 전자 기기나 비디오게임 콘솔)을 꺼내는 것을 지켜보는 사이트인 언박싱닷 컴(unboxing.com)은 “새 장비를 개봉하는 대리 만족”을 약속한다.

여기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기꺼이 미래를 위한 기록과 교환 한 세상이다. 한 비평가가 말했듯이 20세기에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진으로 담고자 하는 충동이 즐거운 현재를 오염시켰다.”78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무지개를 촬영한 것처럼, 오늘날 모든 경험을 디지털로 기록하려는 충동은 기술로 매개되지 않은 현재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없애버렸다.

268
경험의 멸종

우리는 쾌락에 대한 경험을 기술로 매개해 왔고, 그 결과 경험은 변화했다. 19세기에 쌍안경을 사용했던 오페라 관람객은 공연을 완전히 다르게 경험했다. 철학자 페테르-파울 베어벡이 지적했듯 이 콘서트에서 휴대전화로 공연을 촬영하는 관객들이 “경험을 위한 새로운 맥락을 창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항상 경험이 개선되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비평가 드와이트 맥도널드는 “가끔씩 만지지도 사용하지도 않고 권력이나 이익 같은 실용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환하지도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 사냥꾼이 아니라 예술가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좋은 훈련이 될 것”이라고 했다.80

하지만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페이스북의 “사용자 경험 연구원"은 몇 년 전에 인터뷰를 하면서 “새벽 2시의 수유" 게시물을 열심히 검색했다.” 그러자 색다른 게시물 목록이 길게 나타났다.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하면서 자유로운 손으로 휴대전화를 스크롤해 페이스북을 둘러보는 여성들의 사진이었다. 그는 인터뷰하는 기자에게 이 목록을 보여주었다. 이 연구원은 당연히 이것을 긍정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사적인 순간을 대중이 소비할 수 있게 공유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더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물론 그와 동시에 페이스북에 유용한 데이터가 생성된다.

정말 모든 경험을 기술로 매개해야 하는 것일까?

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 269

대체 불가능한 쾌락

1929년 가을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16세기에 지어진 에스코리 알을 방문했다. 마드리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에스코리알은 과거 스페인 왕의 거주지이자 매장지였다. 그곳에서 그는 엘 그레코의 <필립 2세의 꿈 Dream of Philip II〉(천국, 지옥, 연옥, 기도의 이미지로 둘러싸인 스페인 왕을 묘사한 정교한 작품이었다)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보다 과거의 사람들이 현실의 육체적 쾌락과 고통에 더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헉슬리는 엘 그레코와 그 시대 사람들은 삶의 거의 모든 측면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심장과 간, 비장과 정맥이 사람의 모든 감정을 대신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에스코리알 자체가 보여주듯이 “가장 숭고한 경험"조차도 물리적으로 표현되었다. 건축가는 이 건물의 수호성인인 성 로렌스가 처형된 쇠 그릴과 비슷한 모양으로 건물을 설계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헉슬리가 스페인 여행 중에 즐겼던 또 다른 즐거움, 즉 무지의 “사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그는 “무지의 즐거움은 지식의 즐거움만큼이나 크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사물을 질서 있고 이해하기 쉬운 시스템 안에 넣는 것”이 만족스러웠지만, 바로크 시대 예술가가 보는 어둠이나 낯선 장소의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헉슬리는 여행을 통해 그런 감수성을 얻었지만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잠시만 멈춰서 시간을 갖는다면 누구나 그런 “막연한 당혹감”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 여행보다 안락의자에 앉아서 하는 여행을 선호하고, 불편한 미술관 관람보다 사본 보는 것을 선호하고, 실제 사람과의 섹스 보다 포르노의 안전성과 예측 가능성을 선호하고, 요리를 하는 것보다 요리 프로그램 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을 데이터로 모사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쾌락에 대한 정보가 실제로 경험하는 쾌락과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헉슬리가 상기시켜 주듯이 이런 종류의 이해는 “우리 존재에 대한 매 순간 새로워지는 신비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필요로 한다.

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 273

모바일 기술이 발명되기 훨씬 전에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뿌리 뽑힘 uprootedness'을 현대의 질병이라 불렀다. 베유는 현대인의 지역사회 참여 부족과 장소에 기반한 유대 관계의 부족을 우려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이 가져온 뿌리 뽑힘을 수용하고 그것을 '연결' 또는 '이동성'으로 재정의한 다음 이를 일과 여가의 표준으로 삼았다. 휴대전화나 VR 헤드셋(또는 미래에는 이식형 칩) 덕분에 우리는 몸이 어디에 있든 여전히 집과 직장 가까이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장소 없는 모바일의 미래로 달려가면서 시민 생활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소의 개념을 잊어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매력적이고 새로운 방식이 발견되면서 오래된 방식은 짧은 추도사조차 없이 사라지고 있다.

당연히 그것이 인간의 존재 의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286 경험의 멸종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