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바가 많습니다.
이 책의 배경인 홍콩 청킹맨션, 등장인물인 아프리카 탄자니아인, 일본인 저자를 떠올립니다.
각각의 상황들이 지금의 일상의 배경과 등장인물들로 치환됩니다. 홍콩은 서울, 아프리카 탄자니아인들은 우리 여기 사람들, 청킹맨션은 내가 소속된 연구소, 작금의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떠오르며 이들이 책에서 만난 내용과 중첩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온유와 인내라는 단어가 겸사겸사로 떠오릅니다.
밑줄 그은 내용들입니다.

선진국의 우리는 산다는 것과 경제가 격리되어 있는 듯한, 거대한 허구의 세계 시스템에 우리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 같다. '현대스러움'과 근원적인 경제의 논리가 인류사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미래 인류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이들, 공유·연결·특이점 singularity·기본 소득 basic in- come에 관심을 두는 모든 이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 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互酬性*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인연이나 자유에 대한 강조, 타자에 대한 배려, 타자와 맺는 관계의 번거로움 등과 같은 다양한 국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말았다. 이 책에서 홍콩에서 살아가는 탄자니아 인의 삶의 모습과 그들이 형성하는 경제 구조를 독해하여...
* 문화인류학 용어로, 영어 reciprocity 등의 번역어다. 보통 '호혜'로 많이 번역되며 '상호성'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책 뒷부분에도 나오듯이 이는 좋은 의미의 '혜(惠)'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며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의미도 담고 있기에 여기서는 국내에 번역된 가라타 니 고진 등의 책을 참고하여 '호수성'으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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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보스'와의 만남
그렇게 카라마가 허둥지둥 청킹맨션에 돌아오자 다 시 한번 타격을 가하는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이 친절하게 비즈니스 노하우를 가르쳐주었던 동료들이 “이제 카라마는 두 번 다시 홍콩에 오지 못하게 되었으니 중고차 비즈니스는 내 거다”라며 축배를 들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카라마는 자신의 불행을 기뻐하며 축배를 드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아연해졌고 한동안 인간 불신에 빠졌다 - 지금 와서는 다 옛날 일로 넘긴 것처럼 얘기하지만 “질투가 가장 큰 적”이라는 말이 입버릇이다.
그럼에도 홍콩에 돌아온 이후 몇 년 동안의 장사는 대체로 순조로웠고 즐거운 일도 많았던 듯하다. 그는 매일 캄셩로드의 중고차 해체업자와 판매업자들을 만나 쓸만한 중고차를 찾은 뒤 아프리카 국가에 있는 고객들에게 전화와 메일로 영업을 했고, 한 달에 7,000달러, 장사가 잘 될 때는 1만 달러를 벌었다. 홍콩 및 중국에 상품을 대량 매입하러 오는 젊은 교역인과 초보 브로커에게는 '형님' 으로 존경받았고 젊은이들을 데리고 밤이면 밤마다 센트럴이나 완차이의 바와 클럽에 몰려갔다. 홍콩 클럽에 모이는 유럽인과 미국인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아프리카계 성 노동자들도 그를 믿고 의지하는 바람에 젊은 여성부터 연상의 여성에게까지 “하여튼 인기가 많아서 곤란했어"라며 카라마는 히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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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
표면상의 얼굴과 뒷모습, 페르소나와 민낯이라는 이분법적인 인간관에 따라 '신용'을 설명하는 것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타자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은 서로 별 개의 일이다.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도, 또 다른 얼굴에는 전적으로 신뢰가 결여되어 있어도, 특정한 얼굴은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다. '우정'에 대해 생각해 보면, 신뢰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무관심이 아니라 다양한 사정을 감안하여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기로 결심한 배려이기도 하다.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탄자니아 홍콩조합을 결성하여 궁지에 빠졌을 때 서로 돕는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에 모이는 사람들은 연령이 다양하며, 양복을 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량배같이 차려입었거나 티셔츠와 샌들 바람으로 다니는 사람도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 독신인 사람, 이혼한 사람도 있다. 월 수입이 6만 달러가 넘는 부호도 있고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제각각'이면서, 아니, ‘제각각'이기에 그들은 연결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이 어떻게 조합을 결성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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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주로 난민이나 망명자, 불법 체류자, 성 노동자 등 적잖이 떳떳하지 못한 데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합이 ‘왜 그를 도와야만 하는가'라는 의 문에 대해 ‘어려울 때는 피차 마찬가지'라는 호수적인 논리로 생각하는 게 가능할까. 병 때문에 사망한 경우와 불법 노동의 결과로 안게 된 문제 사이의 차이 - ‘자기 책임'이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를 묻기가 매우 까다로운 사람들에게 호수성이란 무엇일까. 나아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조합은 유동적으로 홍콩과 아프리카 국가를 오가는 사람들도 잠재적·주변적 구성원으로 품고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불행이다. 하지만 조합에 계속 공헌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 어쩌다 만났을 뿐인 사람의 불행에 응답한다는 것을 이들은 어떠한 논리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이제 구체적인 조합 활동 사례를 소개하면서 반드시 '선한 시민', '선한 친구', '선한 이웃'이 아닌 사람, 서로 가 서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서로 돕는 구조와 논리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이 생겼을 때 서로 돕는다는 것
탄자니아 홍콩조합의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 사망 시에 시신을 운구하는 비용의 기부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는 여행지나 돈을 벌러 간 곳에서 사망한 사람은 반드시 고향에서 매장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범이 있다. 탄자니아에서도 시신을 운구하려면 트럭 수배 등에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도시로 돈을 벌러 나온 가난한 사람은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병에 걸리면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큰 병원에서 치료받기를 포기하며 스 스로 버스를 탈 체력이 있는 동안 고향에 돌아가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해외에서 사망했을 때 시신 운구에 드는 비용은 일반 가정이 부담하기 어려운 액수 다. 타국에서의 죽음은 '당한 이가 누구 건 동포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불행'으로 인정받기가 비교적 용이한 사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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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기는 이슬람교도였기에 먼저 모든 이슬람교 조합 원이 쿠란의 한 구절을 제창했고, 이어 그리스도교 조합원 한 명이 대표로 성서의 한 구절을 암송해 애도를 표했다-조합은 대략 이슬람교도 80퍼센트, 그리스도 교도 20퍼센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뒤 청킹맨션 아프리카 식당의 요리사 쇼마리가 멘기의 마지막 모습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를 들은 여성 조합원들 사이에서 훌쩍이는 소 리가 흘러나왔다. 카라마는 “멘기[와 함께한 추억]에 대해 말하고 싶은 조합원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며 모두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30대 중반의 이 남성은 처음에 홀로 광저우로 상품을 매입하러 갔을 때 일면식도 없는 젊은이였던 자신을 친절하게 도와준 사람이 멘기였으며, 그의 부고를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한 뒤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힘을 모읍시다"라고 호소했다.
그다음에는 홍콩, 마카오, 태국 비즈니스를 개척한 탄자니아인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나이 지긋한 남 성이 손을 들고 멘기는 고락을 함께해 온 전우 같은 존재였다고, 이후에 건너온 탄자니아인 누구나가 아시아 국가 에서의 비즈니스를 개척한 그에게 은혜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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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겸사겸사'가 구축하는 안전망
그는 "(오늘 집회에 오지 않았고) 기부를 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불행을 겪었을 때는 도움을 받으려는 인간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참에 누가 동포 ndugu이고 누가 아닌지 확실히 가려야 해요"라고 주장했다.
이에 찬동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어느 여성은 “아까 홍콩에 있는 사람이면 1,000홍 콩달러 정도는 당연히 낼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우리는 다른 조합원이 어떤 비즈니스를 하는지 간 섭하지 않아요. 그러니 각자 얼마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의견을 말했다. 몇몇 젊은이가 찬동했고 “기부액은 각자의 재정적 능력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이번에 기부할 수 없는 사람에게 배신자 딱지를 붙여서는 안 돼요. 지금은 비즈니스가 잘 풀리지 않을 수 있고, 다음에는 기부를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는 반론이 연 이어 나왔다. 카라마는 “기부는 기부이고 1,000 홍콩달러는 어디까지나 목표에 지나지 않으니 여유가 없는 사람은 가능한 만큼만 기부하면 돼요”라고 이야기하고 이마와 그에게 찬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니 기부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현재 수중에 돈이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기부를 했고 돈이 없는 사람은 일주일 내로 담당자에게 기부금을 내기로 했다. 또 각자 분담해서 이날 집회에 결석한 조합원들에게 기부를 요청하기로 했다.
조합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 사실은 기부 관련 절차가 일단락되고 난 뒤 작은 사건이 있었다. 앞서 발언한 남아프리카계 여성이 ‘뇌사'에 의문을 품고 아프리카인 환자를 오랫동안 수용하기를 내키지 않아 하는 의사들이 멘기를 죽인 게 아니냐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식물인간이 된 멘기의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한 것은 살 인이 아니냐는 토론이 시작되었고 결국 이튿날 병원에 가서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고 한다.
어쨌든 약 일주일 뒤 탄자니아 홍콩조합은 광저우조 합, 케냐 조합, 우간다 조합의 기부금을 더해 1만 1,700달러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시신 운구에 드는 경비를 빼고 남은 금액은 멘기의 딸의 학비로 쓰기로 동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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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죽음이라는 특별한 사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또한 조합 활동과 타자에 대한 세세한 규칙이나 규범을 가능한 한 만들지 않는다/애매한 채로 둔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얘기한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들의 집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데, 최종적으로는 '여러 사정이 있으니 세세 하게 따지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 무임승차자 문제도, 기부금을 상황에 따라 달리 받자는 제안도 다시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첫 째, 홍콩조합 집회에서 한 여성이 발언했듯이 기본적으 로 이들은 조언을 요청받지 않는 이상 타자의 비즈니스와 행위에 끼어들지 않기에 그 사람의 '사정'을 자신이 속속들이 알 수 없음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연구자로서 이들의 생활사나 비즈니스에 대해 묻거나 들으면서 조사를 해 왔는데, 대상자가 어떤 일을 태연히 설명해 주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내게 “그에게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지 모르니 놔둬"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그 이상은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라는 조언도 받곤 했다. 타자의 복잡한 사정은 알 수 없는/알고 싶지 않은 것이기에 타자의 '자기 책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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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겸사겸사'가 구축하는 안전망
이는 '본성',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사업' 을 몰라서 그런다기보다 누구나 처한 상황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 해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인다. 카라마와 동료들은 “저 사람은 지금 잘 나가니까 돈을 빌려줘도 괜찮아”, “저 사람은 지금 수입한 천연석 품질이 나빠서 크게 손해를 보고 있으니까 조금 주의하는 게 좋아”, “저 사람의 연인도 함께한다면 그는 좋은 녀석이니까 놀러가”라고 '지금'의 상황에 한정하는 형태로만 타자를 평가한다. 언뜻 냉정하게도 보이지만 이는 일종의 관용과도 표리일체다. 즉, '페르소나'와 그 뒷면에는 '민낯'이 있는데 ‘민낯'을 모르니까 신뢰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일관된 불변의 자기自己 같은 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세 번째 배경은 난민으로 거주하지 않는 조합원들 은 유동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오가기 때문에 구성원 사이의 엄밀한 호수성을 고려/계산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나는 앞서 이야기한 홍콩조합의 긴급 집회에 참가해 1,000 홍콩달러를 기부했다. 며칠 후에 탄자니아로 건너가 귀국해 있던 조합원들의 집회에 참가했을 때도 기부가 시작되었기에 일단 지갑을 열었는데 “중국과 홍콩에서 귀국한 조합원들의 기부금 액수는 홍콩 쪽이랑 거의 같네요”라고 감상을 말하자 조합원들이 "아, 그래요?"라면서 홍콩에서의 기부금 액수를 몰랐다고 한 다음, “혹시 거기에서도 기부했어요? 그렇다면 여기서 는 안 내도 괜찮아요” 하며 기부를 거절했다. 즉, 누가 다른 장소에서 얼마나 공헌했는지 정확히 공유되지 않았다. 마침 홍콩도 모국도 아닌 곳-예를 들어 마카오나 태국 등에 있었다면 조합 활동에 공헌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또 본인이 희망하면 어디로 이동하더라도 관계가 지속되지만, 본인이 바라지 않는다면 자연 소멸한다. 2018년 3월에 홍콩으로 건너온 후 난민으로 8년 넘게 체 류했던 두 탄자니아인이 비즈니스를 그만두고 귀국했다. 그들과 늘 함께했던 자하브(가명)에게 “쓸쓸하지 않아?" 라고 물었더니 그는 “잠시 동안은 쓸쓸해도 금세 잊어"라 고 하며 미소 지었다. 이처럼 멤버십이 불안정한데 조합에 대한 공헌도를 ‘상호 부조'의 조건으로 삼기란 어렵다.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 돕는 인간을 구별·평가하는 기준을 명확화 하기'와 '상호 부조의 기준·규칙을 명확화 하기' 어느 쪽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합 운영과 조합 내 상호 부조 면에서, 엄밀한 기준과 약속에 의해 '서로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것'을 되도록 회피하기를 규칙으로 삼고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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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능성에서 주고받기 give and take의 기회를 발견해 내는 각자의 ‘지혜'에서 비롯한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카라마의 휴대폰에는 정부 고관이나 대기업 사장, 사기꾼, 도둑, 전과자까지 온갖 사람이 등록되어 있다. 이들과의 네트워크는 ‘겸사겸사'에 의해 구축되어 왔다. 상대를 불문하고 돕는 까닭은 자신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카라마가 내게 물었다. “사야카, 사기를 당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정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내가 "음... 경찰이나 변호사?” 하고 대 답하자 “아니지. 그야 사기꾼의 친구인 게 당연하잖아. 누가 나중에 도움이 될지 모르는 거야. 왜냐하면 미래는 아무도 모르거든. 성공한다면 대기업 경영자인 동료가 중요해질 수 있어. 하지만 체포당하면 수감자인 동료가 중요해지는 법이야. 일본에 가는 날이 온다면 일본인인 사야 카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겠지만, 어쩌면 태국에 가게 될지도 모르지. 중요한 것은 동료의 숫자가 아냐. [유형이 다른] 이런저런 동료가 있는지야”라고 말한다.
이처럼 타자의 '사정'에 개입하지 않고, 구성원 사이의 엄밀한 호수성이나 의무와 책임도 불문한 채, 무수히 확대 증식하는 네트워크 내 사람들이 각자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이들은 부담 없는 '서로 돕기'를 촉진하고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한 안전망 safety net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 '열린 호수성'은 구성원 간의 신뢰와 호수성을 키 움으로써 '선한 사회'를 목적 지향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시민 사회 조직'의 논리보다 ICT나 사물인터넷 IoT, AI 등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주목받게 된 공유경제나 공짜경제 Freeconomics 사상과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즉, 이들의 조합을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나 숙소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 또는 불특정 다수 유저의 게시물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무료로 이용하는 여러 사이트 같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하면 논리가 통한다. 조합 활동은 이들이 비즈니스를 위해 구축한 SNS상의 경매 시스템이나 전자화폐가 오가는 크라우드 펀딩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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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매일 가지 않는 거예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카라마는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매일 이스마일을 만나러 가면 그는 나를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거야. 이스마일이 화를 낸다고 그의 말에 따르는 태도를 보이면 나를 자기 직원처럼 취급하겠지. 나는 파키스탄인과 수년 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건 예측이 아니라 사실이야. 만약 이스마일에게 고용되면 이스마일만 돈을 벌고 나는 그의 돈벌이를 위해 일을 하게 돼. 우리 아프리카인이 홍콩의 업자들과 대등하게 비즈니스를 하려면 그들이 나를 그리워할 무렵에 가는 게 딱 좋아.”
카라마는 그들이 진심으로 화를 내지 않도록 때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도 무릇 자신들을 대등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루기 쉬운 인간'이 되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각이나 약속을 깨는 행동 전부가 계산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일은, 아프리카인 또는 불안정한 이민자/난민인 그들이 실질적으로는 힘에 차이가 있는 홍콩의 업자들과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흥정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카라마와 브로커들은 늘 ‘대등', '균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카라마를 처음 만났을 무렵에도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의뢰를 했다. 카라마는 내가 그와 신용 거래를 해줄 일본의 중고차 업자를 찾아주기를 바랐다. 일본의 중고차 업자는 카라마와 브로커들에게 우선 중고차들을 보내고, 카라마가 그 중고차들을 홍콩에 있는 아프리카계 브로커나 아프리카의 15개 이상 국가의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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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카드가 보급되어 있지만 카라마는 매일 표를 산다. "매일 전철을 타니까 IC카드를 사면 편하지 않겠어 요?"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옥토퍼스를 스무 번도 넘게 잃어버렸어. 어차피 잃어버릴 테니 표만 사기로 했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덜 된 인간이다.
캄셩로드역에는 각 지구로 가는 버스들이 있지만 카 라마와 브로커들은 대개 택시를 이용한다. 카라마는 '직 진', '앞', '왼쪽', '오른쪽', '여기서 정차' 등의 간단한 광둥어를 반복하며 캄틴에 있는 여러 단골 중고차 판매점과 해체업자의 가게로 택시를 능숙하게 안내한다.
택시에 올라타면 카라마는 늘 운전기사의 명패를 확 인하고 “미스터 ○○”라고 친밀하게 부른 다음 “당신은 홍콩에서 태어났나요? 아니면 중국 본토 출신인가요?"라 고 말을 건다. 운전기사들은 대체로 무시하지만 카라마는 “여기는 미스터 카라마, 홍콩에서 라이브로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미스터 ○○의 안전 운전으로 캄틴으로 가고 있어요. 예이, 예이! 미스터 ○○, 아프리카의 시청자 여러 분께 한마디 해주세요!”라고 크게 떠들며 인스타그램 라 이브 방송을 시작한다. 운전기사들은 한껏 기분이 고조된 카라마에게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가 내민 스마트폰 화 면을 보고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영어가 능숙한 운전기사들은 때때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이런 행동은 카라마 나름의 배려이고 일을 하기 위한 기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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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사람을 자주 태웠는데, 여자도 몇 명 있었고, 데리고 다니는 젊은 남자도 늘 달라져요. 내 생 각에 저 사람은, 아마 일본어로 말하자면 야쿠자 두목 같아요”라고 충고했다. 차로 돌아온 카라마에게 스와힐리어로 이를 얘기해 주자 그는 “중고차를 사러 오는 교역인 중에는 여자도 있으니까”라고 대꾸하며 웃어넘겼지만, 아쿠자 두목이라는 말을 의식했는지 손님에게서 선글라스를 빌리더니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어깨에 힘을 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어쨌든 카라마는 자신을 경계하거나 꺼림칙하게 여기는 운전기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 축해 그들이 불안해져서 도망가거나 길거리에서 승차 거부를 하지 않도록 매일 노력하고 있다.
아바시와 사미르를 안내한 날의 운전기사는 “나는 지금까지 아프리카인은 다들 가난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손님들을 보니 저보다 부자인 것 같아요. 보통 홍콩 인은 하루 종일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지 않고 매일 중고차를 매입할 자본도 없어요. 손님들은 어떻게 해서 돈을 버나요?"라고 솔직한 질문을 던졌다. 카라마가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 사실 아프리카인은 마술을 부려서 돈을 벌고 있으며, 자신도 마술사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 그 이야기를 믿으려는 운전기사에게 내가 카라마는 브로커이며 그가 데려온 사람들은 고용주라고 설명했다-마지막 거래처 사무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운전기사와 완전히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요금을 지불할 때가 되자 카라마는 즉각 “우리는 이제 친구니까 택시 요금 좀 깎아줘요”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운전기사는 바로 “노 머니, 노 프렌드!"라고 딱 잘라 대답했고 카라마는 “어이 쿠야” 하고 외치며 요금을 지불했다. 카라마와 손님들의 매입 투어는 매번 놀라움과 기대가 넘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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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는 업자들도 앞선 이에게 소개받았기 때문에 역시 같은 사람들이다. 고객의 요망에 합치하는 차종을 좀처럼 찾을 수 없을 때는 SNS 등을 통해 동료들에게 “RAV4를 본 적 없어?”라고 물어보는 게 일반적이며, 왓츠앱의 그룹 페이지에 “RAV4를 찾고 있음"이라는 식의 글을 올려 누군가가 정보를 보내주길 요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보 교환은 이들이 고객의 요망을 효율적으로 들어줄 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이지만, 이틀이나 걸어 다니며 겨우 발견한 상품을 다른 브로커에게 간발의 차로 뺏기면 분한 마음도 든다. 게다가 점찍어둔 차가 다른 브 로커에게 팔렸기에 할 수 없이 타협해서 다른 차를 매입해 청킹맨션에 돌아오면, 사실 타협해서 산 차야말로 자 신이 점찍었던 차를 구매한 브로커가 원래 찾아다녔던 차라는 안타까운 결말로 끝날 때도 종종 있다.
즉, 그들은 '고객 네트워크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틈새시장'을 나누어 가지면서 상품, 매입처, 비즈니스 요령, 교섭술 등은 '커먼즈 commons'로서 공유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으려고 홍콩에 진출한 이들은 자영업을 선호하며, 업자에게 노동자로 고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브로커와 공동 경영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이의 고객 네트워크를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느슨한 '틈새시장'을 확보해 나가는 한편으로, 장사 방법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경쟁자를 늘리고 그 경쟁자와 정보를 '공유'해나가는 것은 스스로 상품이나 매입처를 둘러싼 경쟁을 격화하는 행위로도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겸사겸사' 무리하지 않고 서로 도움으로써 홍콩에서의 생활을 일구어나가는 ‘생활의 논리'와 시장 경쟁이라는 ‘비즈니스의 논리' 사이에서 안전망을 창출·유지하는 '일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실천'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 장에서는 이들이 구축한 공유경제가 어떠한 일 하는 방식·살아나가는 방식의 논리와 결부되고 있는지 검 토한다. 각자의 경제적 이익과 자율적인 ‘생활 보장'을 양립시키며, 일에 따라붙는 무겁고 답답한 의존 관계를 교 묘히 회피하기 위한 처방전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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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거래 실적으로 친구나 동료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은 우정에 반하는 일이며, 홍콩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불안정하고 투기적인 시장을 상대로 장사하는 이들이 볼 때 과거의 거래 실적이 미래의 신뢰를 보장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들의 SNS 계정에는, 많은 타 SNS 계정들과 마찬 가지로 각 개인이 무심코 노출하는 무방비한 모습이나 허식과 겉치레가 뒤섞여 필요 이상으로 멋져 보이는 모습이 가득하다. 게다가 SNS는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은 없고, 거꾸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극악한 인물도 없다는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몇 주 전에는 인망이 좋고 온화한 얼굴을 보여주던 인물이 비즈니스에 실패해 궁지에 몰리면서 무언가 위험한 낌새를 풍기거나, 인격자다운 발언을 거듭하던 인물이 순간의 실언으로 비난을 받는 것은 딱히 드문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애당초 이들은 타자의 과거나 현재 상황을 속속들이 알려하지 않으며, 인간은 언제나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으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문맥에 따라 한정적인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너 무 노골적이어서 도리어 인간미 없어 보이지만, 그때그때의 재정적인 여유, 개인의 지위·신분은 그 인물이 ‘이 정도의 이익을 위해서 배신하지는 않겠지'라는 기대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 근거다 - 물론 부자가 좋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가정이 전혀 옳지 않다는 사실은 이들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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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행동은 타자에게 공감하고 동료와 공존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장사'에도 연결된다면 기쁜 일이고 행운이다. 그러나 '장사'를 위해 동료에게 등급을 매기거나 평가하고, 동료를 늘리려는 경쟁이 목적이 되면 친절한 행동 자체가 따분한 일이 된다. 동료를 웃길 수 있는 웃긴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거나 많은 동료에게서 칭찬받는 자신을 찍은 동영상을 올리는 것은 '놀이'이자 '즐거움' 그 자체이며 겸사겸사 '일'에도 활용하고 있을 뿐, '일'을 위해 인터넷을 뒤지거나 자신을 찍은 동영상을 올린다면 모처럼의 즐거움이 시시해지고 귀찮기 짝이 없는 시간이 되고 만다.
생각해 보면 '즐겁지 않다', '귀찮다' 같은 매우 자연스러운 실천적인 감각, 거래 실적이나 능력으로 친구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평범한 공정함을 지니고 굳이 '카오스' 상태로 남아 있는 데에는, 시장 교환과 증여 교환이나 분배의 가치가 역전되지 않는 접속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주
1 예를 들면 レイチェル・ポッツマン、ルー・ロジャース、『シェア:〈共有〉から ビジネスを生みだす新戦略』,小林弘人 監修,関美和訳, NHK出版, 2010(레 이철 보츠먼·루 로저스, 『위 제너레이션: 다음 10년을 지배할 머니 코드』, 이은 진 옮김, 모멘텀, 2011). 松島聡,『UXの時代: IoTとシェアリングは産業をどう
177 제4장 공유경제를 지탱하는 TRUST
내가 말을 걸자 체스터는 '들켰구나' 싶은 표정을 짓 더니 “비밀이야”라고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사실은 돈이 부족해져서 말이지”라고 고백했다. “그야 그렇게 사람들에게 대접했으니 돈이 부족해지겠죠. 배탈 이 났다고 하고 잠시 동안 사람들과 식사하러 가지 않는 건 어때요?” 하고 권했지만 그는 “괜찮아. 동료를 기쁘게 해주는 게 나의 유일한 즐거움/오락starehe이니까"라고 답 하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분명 누군가를 돕거나 즐겁게 해주는 것 자체가 쾌락이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그러한 몇몇 요청에 응하는 것, 몇 사람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것은 기쁨이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간도, 삶의 보람도, 인생의 목표도 될 수 있다.
돈이 없다면서도 아내와 애인들에게 번 돈을 송금하는 것도, 자식이 아홉이나 있어 벌어도 벌어도 학비로 다 나간다고 우는소리를 하는 것도, 남자들은 제멋대로라면서도 키벤텐에게 옷을 사주고 동포 남성들에게 밥을 해서 먹이는 것도, 탄자니아 홍콩조합의 활동에 기부를 하는 것도, 교역인들에게 선물을 사주고 사귀는 것도, 고향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도,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것도, 그 자체에 쾌락이 있고 기쁨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얘기여서, 또는 그 쾌락이 갖고 있는 공과功過에 지나치게 신중한 나머지 나는 그 사실을 잘 잊어버린다.
243 제6장 사랑과 우정의 비결은 돈벌이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 삶의 배경은, 아마도 동료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 이 궁지에 처한 동료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체스터처럼 파티로 돈을 뿌리거나 동료들과 성 대하게 먹고 마시는 광경을 보면 '낭비', '탕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대접받은 동료들이 '재는 정말 벌이가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하기만 하고 다음에 자신이 똑같이 대접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 것, 즉 ‘즉각적으로 변제해야 하는 채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렇다면 대접하는 사람은 허무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보게 된다. 이들의 인생 보험은 저축이 아니라 함께 나눔을 하는 동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동료가 언제 갚게 될지는 상황(운)과 그 동료의 기분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에 불안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런데 나도 한때이기는 하지만 이 나눔의 쾌락에 빠진 적이 있다. 박사 과정 대학원생으로서 탄자니아에서 조사하던 시기, 나는 친구인 노점상들과 이웃들로부터 매 일같이 “도와줘”, “조금만 빌려줘”라고 금품을 요구받는 데 질려 있었다. 당시 나는 연구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온 데다 부모님에게 부족한 연구비를 빌리는 게 괴로웠다. 탄자니아와 일본의 구조적인 경제 격차는 이미 아는 바였고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내 조사에 협력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워서 할 수 있는 한 보답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가벼운 태도로 도와 달라고 요청하면 '일본인이라고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는 것처럼 돈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라는 불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245 제6장 사랑과 우정의 비결은 돈벌이
이웃인 시티 버스 승무원들은 나를 “멤버”라고 부르며 매일 공짜로 버스를 태워줬다. 내가 “조사를 위해 ○○ 에 가고 싶어"라고 하면 그때마다 내가 가고 싶은 동네로 가는 트럭 운전기사를 찾아서 “얘 좀 태워줘”라고 부탁했 다. 중고 의류 노점상들은 “어차피 중고거든”이라고 하면서 나에게 상품을 빌려준 덕에 많은 노점이 내 옷장을 대 신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동료 대부분이 상인이라 먹거리부터 샌들까지 다양한 ‘팔다 남은 상품'도 얻을 수 있었다. 그중 몇 가지는 되팔아서 돈으로 바꾸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원하면 교환하기도 했다. 돈을 번 날은 동료들과 술을 마셨고, 돈을 벌지 못한 날은 물을 잔뜩 마시거나 이가 빠질 만큼 딱딱한 구운 옥수수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치료비가 드는 현대적인 병원이 아니라 근처에서 전통 의술로 치료하는 친절한 의사에게 가기도 했다. 행상을 도우며 번 돈도 그 자리에서 동료들에게 나누어줬다. 사실 어려움에 처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당시 나는 분명 현재를 살고 있었다. 돈을 나누어준 사람들이 내 생활의 양식이자 생명선이었고, 나는 동료들의 제멋대로인 친절과 지혜에 의지함으로써 봉투에 든 돈을 계산하며 앞 일을 걱정하던 나날에서 해방될 수 있었 다-귀국하자마자 은행 잔고부터 확인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247 제6장 사랑과 우정의 비결은 돈벌이
좋게 선물을 골랐던 나도 연달아 “폴로셔츠가 닳아서 떨어졌어”, “아픈 친구들에게 건강 기능 식품인 마늘 진 액이 필요해”, “스마트폰 액정 보호 필름을 구하지 못해 곤란하네” 등등의 왓츠앱 메시지를 받는데 질려서 카라마에게 “조지프가 이때다 싶어서 '이것도 사 와라 저것도 사 와라' 하고 끝도 없이 요구하네요”라고 투덜댔다. 카라 마는 껄껄 웃으면서 “조지프에게 ‘그럼 나한테 얼마나 이익이 되느냐'라고 말해"라고 조언한 뒤 “사야카에게 폐가 된다면 내가 조지프에게 줄 선물을 살게. 나한테 맡겨. 내가 둘 다 이익을 보게 해 줄게. 물론 나도 이익을 볼 거고"라고 하며 윙크했다.
나는 늘 그들이 해준 것과 그들로부터 받은 것,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것과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셈하는 장부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겸사겸사'를 조직하는 지혜를 이해하고 있으나 그게 내 일이 되면 내가 더 베푸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거나, 나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면 서도 이에 둔감한 사람들에게 화도 나고, 그러면서 상대 방이 신경 쓰지 않도록 “괜찮아. 별거 아니니까"라고 말하며 억지로 참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불만은 스스로 지혜를 짜내 해결하면 되는지도 모른다. 조지프에게 “스마트폰 액정 보호 필름 말인데, 10장 세트로 싸게 사갈테니 누군가에게 팔아주지 않겠어? 나는 판매 대금의 절반만 받아도 돼"라고 제안해 보거나, 휴대폰 교역인인 슈와에게 “친구가 액정보호 필름이 필요하다는데 다음번에 필름을 사들일 때 한 장 줄 수 있겠어요?"라고 조지프의 요구를 떠넘기면 의외로 잘 풀릴 수도 있다.
주
1 小田英里,「ガーナ都市部における『シュガー・ダディ』との交際関係: 動機を めぐる視座の再考」,『Core Ethics』15号, 2019, pp.47-57.
2 같은 책,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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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장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이 책에서 홍콩 거주 탄자니아인의 반생半生, ICT와 전자 화폐를 이용한 교역 구조, 탄자니아 홍콩조합과 매일매일의 상호 지원을 통한 안전망 구축, 모국에서 벌이는 사업과 인생 설계 등에 대해 “청킹맨션의 보스”를 자칭하는 카라마를 주인공 삼아 묘사해 왔다.
카라마는 내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책을 쓴다는 사실을 안다. 실제로 카라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야카가 지금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고 있어”라고 동료 탄자니아인이나 모국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늘어놓는다. 나는 종종 왓츠앱 영상 통화 등을 통해 “카라마가 이스마일에게 화낸 일화를 집어넣었어요”, “인스타그램에 접속하지 못해 풀이 죽었던 이야기를 썼어요”라고 책의 내용에 대해 알렸다. 그러면 카라마는 “이렇게(어깨를 움츠리며) 카라마가 풀 죽어 있었다고? 하하하하하” 하고 웃으며 즐거운 듯 재현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카라마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불안해진다. 2018년 9월 홍콩에 갔을 때 카라마에게 "(일본어로 쓰기 때문에) 카라마가 읽지 못하네요.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걱정되지 않아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홍콩의 출입국관리국은 카라마(라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가 아니라 ○○(여권에 기재된 이슬람식 이름)밖에 모르니까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카라마를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이상한 얘기를 쓰지는 않을지 걱정되지 않느냐고요"라고 다시 묻자 카라마는 "나는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아시아인이 우리의 어떤 부분에 놀라고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는지 잘 알아"라고 말하면서 자신 있다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일본에서 오래 산 적 있는) 이스마일(파키스탄계 중고차 업자)도 늘 이야기해. 일본인은 아침부터 밤까지 성실하게 일한다고, 홍콩인들도 부지런하지만 그들은 벌이가 적다는 사실에 화를 내고 일본인은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 화를 내지. 근무 시간에 조금 늦거나, 태만하거나, 꾀를 부리면 일본인의 신뢰를 잃어. 아시아인 중에서 가 장 쾌활하지만 속으로는 화를 내니까 어느 날 갑자기 참 는 데 한계가 와서 공황 상태에 빠지거든. 일본인들은 성 실히 일하는 게 돈을 버는 것보다, 인생의 즐거움보다 중 요하다는 듯이 이야기해. 그래서 우리가 아이 여섯에 아 내도 여섯 있고 하루에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는 등의 얘기를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화를 내는 거야. 아프리카인은 가난하니까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거지.
253 최종장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아프리카인이 아시아에서 즐기거나 큰돈을 갖고 있거나 평온하게 살아가면 수상쩍은 일을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해. 그래서 나는 사야카에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르쳐준 거야. 우리는 성실히 일하기 위해 홍콩에 온 게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홍콩에 왔어."
내가 그의 가르침을 잘 소화했는지 어떤지는 불안하지만, 분명 카라마와 동료들이 가르쳐준 생활 방식에는 내 선입관을 뒤엎기에 충분한 구조와 지혜가 있었다. 최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돌아보면서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리하고, 서장에서 언급했던 대로 우리 사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점들을 제시하겠다.
'융통성' 있는 청킹맨션에서의 생활
카라마에 대한 인상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크 게 변하지 않았다. 이 원고를 한참 집필하는 도중에 카라 마에게서 왓츠앱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지금부터 코코 넛 밀크가 들어간 생선토마토조림을 요리해서 동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거라고 했다. 저녁 식사 뒤에는 분명 단골 파키스탄 식당의 긴 테이블이나 청킹맨션 옆 골목에 서 동료들에게 인터넷에서 찾은 웃긴 동영상을 보여주거 나 모국의 가족이나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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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기에 “카라마는 정말로 다양한 경험을 해봤네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카라마는 “(밀입국으로 체포되어 그 호텔 바로 가까이에 있는) 불법입국자 수용소의 창 없는 방에 머무른 적도 있지만 말이야"라고 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고급 호텔부터 수용소까지 경험해 봤으며, 수백만 엔을 번 달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돈을 빌리는 달도 겪어 왔던 “청킹맨션의 보스”의 반생은 파란만장하다. 카라마뿐만이 아니다. 제5장에서 다루었듯이, 홍콩에서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탄자니아인 중에는 놀랄 만큼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사가 늘 순조롭지는 않다. 불안 정한 신분에서 비롯된 셀 수 없이 많은 어려움 그리고 홍콩과 중국의 투기적이고 불확실한 시장에서의 실패와 궁지로 점철되어 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이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융통성' 같은 것이 관찰된다. 이 ‘융통성'은 이들이 구축한 시스템에 의해, 이들이 타자와 살아가는 가운데 길러온 지혜에 의해 저절로 재귀적으로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타자의 '겸사겸사'를 잘 길들이기
제2장에서는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이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겪는 불의의 사태 때 서로 돕기 위해 탄자니아 홍콩조합을 결성했다는 것, 나아가 이 조합이 광저우의 탄자니아인을 비롯해 케냐인, 우간다인과도 연계하면서 국경을 초월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카라마가 얘기했듯이 한번 네트워크에 속하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동포들의 지원을 통해 어디에서 사망해도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상호 부조는 동포에 대한 지원을 자연스러운 행위로 간주하는 사회 규범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가진 미지의 가능성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포함한 자신의 기회를 발견해 내려는 ‘만만치 않은 타자'의 우발적인 응답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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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파크의 논의는 이러한 선순환의 호수성이 얼마 나 쉽게 악순환의 호수성으로 전락하는지 설명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문자메시지도 친절도 곧바로 답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빚을 남겨두는 것이 걱정이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것과 상대방이 준 것이 등가인지,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 고 있다'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轉化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예를 들면 혐오 발언 -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 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생 활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259 최종장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앙스파크는 이러한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누군가가 자기희생을 해서 선순환 안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누그러뜨릴 수 없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정신론이 될 수 있으며 전체주의와 연결될 위험성도 있다.
이러한 호수성의 어려움을 전제로 홍콩 탄자니아인들의 조합 활동을 살펴보면 그 독특함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구리타 가즈아키가 말했듯이, 중국으로 오는 아프리카인 대다수는 '정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늘 이동하는 사람, '상업적인 여행자'다. 유동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커뮤니티에 계속 관여하고 균질적으로 공헌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투기성이 높은 시장에서‘일확천금'을 꿈꾸는 장사꾼들 사이에는 단지 부자와 가난뱅이만 있는 게 아니라, 내일은 큰 부자가 무일푼이 될 수 있고 빈털터리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으로도 높은 유동성이 있다. 이 들은 깊든 얕든 그레이존에 걸친 모호한 장사를 하기에 교도소와의 거리도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적잖이 켕기는 데가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타고난 성격이나 배경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이 타자에 대한 배려이자 자신의 처세술로 간주된다. 그러한 이들 사이에서 “왜 그 사람이 도움받아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자기 책임의 범위 인가”, “나만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사람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재난이나 어려움에 함께 대처하기 위해서 는, 오랫동안 사귀고, 깊이 알아가고, 크게 신뢰하고, 확실한 인연을 만든다는 발상과는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조합 활동에 대한 실질적인 공헌도나 궁지에 몰린 원인을 묻지 않고, 조합원 자격이 나 타자를 도울 때에 관한 세세한 규칙을 명확히 만들지 않고, 그저 타자가 필요로 하는 지원에 응할 것인지 말 것 인지만을 판단한다. 이 책에서 나는 '왜 나만 애쓰고 있는가', '왜 그 사람은 언제나 도움받는가'라는 멤버 사이의 공헌 불균형, 호수나 신뢰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배 경으로 '겸사겸사'의 논리와 ICT를 이용한 교역 시스템의 연속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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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다양한 기회를 붙잡아 다각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이들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바빠 보이지 않고 슈와처럼 “나는 하루에 한 시간만 일해”라고 공언하는 자도 있다. '융통성'을 느끼게 하는 생활은, '겸사겸사' 얻는 친절을 스스로의 좋은 기회로 바꾸는 ‘(약았으면서도) 현명한' 타자에 대해 철저히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데서 생겨난다.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이게 돈이 돼”, “이 일을 하면 이러한 이익이 있어” 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말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지는 않는다. 이들에게 '여유'가 있다기보다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우연히 만난 타인들에게 아이디어를 투척한 뒤 자신의 요망에 합치하는 기회를 가진 타인이 응답하는 호기를 그저 기다리기만 할 뿐이며, 사업 계획을 다듬거나 사전 교섭을 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히 자신의 활동에 응답한 타자에 따라 비즈니스나 살아가는 방식을 정하는 방법은, 망망대해에 낚싯줄을 몇 개나 드리운 뒤 걸려든 물고기로 어떤 요리를 할지 정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이 런 방법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과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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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불확실한 인간관계에 기대해서 정말로 잘 풀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는 이대로 합리적인 전략이다.
타자는 자신에게 어려운 상담은 듣고 깨끗이 흘려버리고, 자신의 형편에 따라 약속을 파기한다. 조합 참여 활동이나 기부금도 사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으며, 일을 하느라 참여할 수 없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면 공헌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유동적으로 돌아다니며 각자의 인생을 찾을 수밖에 없는, 독립독행으로 살아가는 타자에게 자신의 요망을 들어 달라, 정체를 알지도 못하는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득 던진 아이디어나 SOS 신호가 반드시 누군가에게 포착되고 처음에 기대했던 대로는 아니더라도 어떤 돈벌이나 호구지책이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타자에게 공감이나 공공성을 띤 행동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타자의 '알 수 없는 참모습'을 ‘미지未知/불가지不可知의 가능성' 으로 환영하고, 상장 기업의 사장이나 대통령의 비서만이 아니라 비합법 underground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도 '겸사 겸사' 친절을 주고받음으로써 선뜻 연결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263 최종장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비공식 경제 종사자의 기본적인 특징으로 '생계 다양화' 전략과 '제너럴리스트'적인 생활 방식이 꼽혀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수입원을 일원화하기보다는, 복수의 수입원에 분산 투자하는 게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며, '스페셜리스트'보다 다양한 일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하는 게 살아남기 쉽다는 논의다.? 쉽게 풀자면 ‘뭐가 성공할지 모르지만, 어떤 일이 실패하더라도 다른 쪽 일이 살아남으면 먹고살 수 있다'는 논리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인간, 완벽한 인간이 되게끔 노력해서 자신의 가능성에 베팅하거나 또는 가치관과 자질이 서로 비슷한 동질적인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이에 따른 호수성 및 응답할 의무에 확실히 응답해 가는 대신에, 능력, 자질, 선악의 기준, 인간성이 다른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느슨하게 연결되고 타 자의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우발적인 응답'의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은 '이질성과 유동성이 높고 누가 응답해 줄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불합리한 전략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나름대로 해내는 제너럴리스트인 동시에 어떤 인간과도 나름대로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타자의 사정에 깊게 발을 들이지 않고 멤버 상호 간의 엄밀한 호수성이나 의무 혹은 책임도 불문한 채, 무수히 증식 확대되는 네트워크 내 사람들이 각자 '겸사겸사'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부담 없이 서로 돕기를 촉진하고, 홍콩, 중국, 마카오, 태국, 두바이, 아프리카 국가에 걸친 거대한 안전망을 만들어냈다.
ICT, IoT, AI 등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겸사겸사'의 경제적 가치가 주목받게 되었다. 이들의 조합을 비롯한 네트워크는 우버나 에어비엔비 등의 플랫폼처럼 사람들의 '겸사겸사'나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조직하는 기능을 가졌다. 하지만 이들 조합의 발상은 현대적인 공유경제와는 다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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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강조한 '겸사겸사'는 그 사람이 가진 정신적/재정적/능력적/시간적 여력이다. 그런데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유휴 자원이나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 지향적인 경제 논리로 '겸사겸사'를 조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겸사겸사', '무리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사람이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낭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단치 않음'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을 찾아 홍콩에 와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개별 인간의 자율성, 서로 간의 대등함을 저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를 돕는 이유는 시민 사회, 환경 지속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연일지라도 '함께 있게' 된 정체를 알 수 없는 타자에게 ‘나는 당신의 동료다', '당신은 나의 동료다'라고 표명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즉, 새로운 경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의 논리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동료 간의 증여와 분배를 위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보츠먼과 로저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인류학자와 사회경제학자 들은 “당신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 나도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해줄게"라는 직접 호혜주의 reciprocity의 원리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 친척끼리, 이웃끼리, 작은 마을 주민끼리 거래하던 시절, 서로 얼굴을 맞대고 주고받던 시절, 누가 누구와 어떤 교류를 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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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넓은 의미에서 '친구'다. TRUST에서 거래 상대에 대한 신뢰는, 웃긴 동영상 등을 포함한 일상적인 게시물을 통해 더 생생하고 개별적인, 매일 변해가는 인격을 이해함으로써 생겨나고 있다. 타자를 가려낸다는, 좋아하 는 상대를 선택한다는 것은 인간이 친구·연인·가족 관계나 사회를 구축해갈 때 느끼는 기쁨 가운데 하나다. 친구 나 연인을 선택할 때는 소득이나 외모, 능력뿐만 아니라 좋고 나쁨으로 단순히 분류하기 어려운 인간성도 포함해 서로를 평가하기를 기대하면서도, 경제 활동에서 거래 상대를 고를 때는 평가 수치화와 시스템을 통한 관리가 자연스럽게 추구된다는 점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경제적 평가 시스템이 사회적인 신용을 가늠하는 평가 시스템에도 침투해 이미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뒤섞여 있는 상황이, 인터넷상의 실언이나 한 번의 실수로 개인에 대한 평가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현대적인 현상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신용 시스템이 확립되면 신용 점수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다. 업적, 사회적 지위,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경쟁, 유력자와의 연줄을 늘리기 위한 경쟁은 사람들 사이의 잠재적인 차이를 서열화한다. 이들이 말하듯이 특정 브로커를 '신뢰할 수 있는 상대'와 '신뢰할 수 없는 상대'로 분류하기보다는 ‘누구도 신뢰할 수 없고 상황에 따라서는 누구라도 신뢰할 수 있다'는 관점에 입각해, 개별 브로커가 처한 상황을 헤아리며 한 번 배신당했더라도 상황이 변하면 몇 번이든 믿어보겠다는 태도가, 본인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실패하거나 재난에 맞닥뜨릴 수 있는 부 조리한 세계를 살아가기 쉽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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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려고 하면 포케콘의 알람이 울려서 같은 음료를 한 잔 더 주문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쓰요시는 한 잔 더 주문해 공원으로 향한 뒤 포케콘의 신호에 따라 낯선 남자에게 모카 카푸치노를 건넨다. 그 남자는 모카 카푸치 노를 좋아한다면서 마침 마시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포케콘의 지시에 따라 무언가를 할 때 ‘겸사겸사' 타자에게 선물을 주거나 사소한 친절을 베풂으로써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각자 번 돈으로 충족하는 것 외 에도 다양한 '필요성', '욕구'가 순환한다.
사이토는 이러한 SF적인 선물경제가 ICT, IoT, AI 등 의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화폐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융통성 있는 솔루션(공유 문화)이 형성되고 있는 작금에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한다.
카라마와 동료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종종 이상 한 기분에 빠진다. 이들은 하나같이 “누구도 신뢰하지 않아”, “누구도 신뢰해서는 안 돼”라고 말한다. 딱히 성격이 비뚤어진 것도 아니고 지나친 경계 태세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제5장에서 언급했듯이 홍콩 탄자니아인들은 모두 배신당한 경험이 있기에 이는 타자를 이해하는 현실적인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주 “나는 ○에게 사랑받고 있어", "○○는 나를 좋아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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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고 있는 네트워크에 대수롭지 않게 올린 자신의 요구나 아이디어에 우연히 응답하는 자가 나타나면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해"라고 말한다. 누구도 신용하지 않는/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나에게 베팅했으니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좋아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듯하다. 그런데 반대로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해”, “나는 ○○가 좋아"라는 말은 좀처럼 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올린 요구나 아이디어에 우연히 응해준 타자야 말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응하지 않은 타자 때문에 속을 끓이는 것은 애초에 '밑져야 본전'이거나 '우연한 상황'이었으니까 의미가 없는 데다,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또 한 내 활동의 성패와 거의 관계가 없다.
물건이나 서비스, 정보가 그때그때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시스템, 누군가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돌아가는 분배 시스템이 시장 경제 한복판에서 형성되어 가기를 나는 기대한다. 제5장에서 다룬, 내가 잠시 경험한 것처럼 서로 나누어줌으로써 동료가 되고, 그럼으로써 동료가 마침 우연히 소유한 자원 - 무임승차 멤버십과 팔다 남은 상품 -을 계속 나누어주는 시스템이 넓은 네트워크로 실현된다면 어떨까. 이에 따라 딱히 뛰어나지 않고 때로는 불성실하다 해도 누군가의 변덕 덕에 반드시 살아갈 수 있는 분배경제의 유토피아가 구축되어 가는 것을 몽상해 본다. 인공지능이든 전통적인 종교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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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좋아한다'는 행복한 확신을 인생에서 반복해서 얻으려면 사람들의 우발적인 욕망이 나 욕구가 완벽하게 매칭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때때로 버그나 에러가 일어나는 불완전한 시스템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평소 나는 시종 전자제품에 의지하지만 인류학자로서는 마술에 조종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품지 않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신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니니 포케콘(AI)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 자체를 딱히 공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연히 세계 곳곳의 신들이 변덕스러운 것처럼 포케콘에도 부조리함을 시련이라느니 사랑이라느니 자기 좋을 대로 착각할 수 있는 캐릭터성이 내장된다면 흥미로 울 것이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불완전한 인간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자나 사회에 제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자기 입맛에 맞게 타자와 사회에 의의를 부여함으로써 배신당하는 상황을 포함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이들의 시스템은 세련되지 않고 적당하며 허술하기에 오히려 멋지다.
카라마가 “그래서 내가 홍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가르쳐준 거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하지만 나는 카라마의 뛰어난 제자는 아닐지도 몰라요. 카라마가 가르쳐준 것이나 전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게다가 내가 심술궂게 카라마를 극악한 보스처럼 묘사하면 어떡할 거예요?"라고 물었다. 카라 마는 여유가 가득한 얼굴을 하며 “괜찮아. 사야카가 나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라고 단언했다. 그건 사실이다. 단, 내가 왜 그를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카라마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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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른이 될 때까지(된 이후에도?) “이상한 사람이다”, “붕 떠 있다”라는 말을 계속 들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커뮤니티 생활이나 농밀한 인간관계에 서투르기만 하다. 연대하자는 요청을 받아도 집단행동이 능숙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다지 예의 바른 아이가 아니었던 탓도 있고, 솔직히 이웃 주민이라는 말을 들으면 소문을 좋아하는 아줌마나 잔소리 심한 아저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 카라마나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니 SNS를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SNS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나야말로 덜 된 인간이다.
그러나 자영업자라는데 가치를 두는 카라마와 동료들도 기본적으로는 개인주의자처럼 보인다. 오는 사람 막 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건조한 인간관계를 선호하고, 심야에 모여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무엇을 위해 모여 있는지 잘 모르겠다. 타인의 생활 방식에 개입하기를 꺼리는 이들은 도덕을 설교하지 않고 강한 창업가 정신을 지녔지만, 정치 이야기는 해도 사회 상황이나 제도에 대한 불만은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 - 분명 ‘프로젝트'를 개시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들은 나와 같은 침입자에게도 있을 자리를 제공하고, 나를 그들의 비즈니스 기회에 끼워 넣음으로써 '협력받고 있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배려마저 해주었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나 같은 인간도 타자에게 크게 헌신 commit 하지 못해도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역설적인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된다. 아니, 의외로 이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홍콩 탄자니아인들의 방식에 공유경제와 통하는 행동 양식이나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 이들이 효율성과 편의성을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 우위에 두거나 신뢰의 등급화를 목표로 삼는 것과는 다른 회로回路로 실현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한 방법론으로 민족지를 통해 세련된 사회경제 시스템의 이론과는 다른 인간 사 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가 반드시 '위험한 타자'나 '이질적인 타자'를 배제하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음을 사 고하는 한 걸음이 된다면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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