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장 한 귀퉁이에 숨어 있는 좀 오래된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지구별 여행자는 저자가 류시화 작가인데 이름은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번에 류시화 님의 책을 난생처음 펼쳐봤습니다.
특히 류시화 작가가 남자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것 조차도 책을 읽는 도중 여자 작가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아니, 여자의 경험담 치고는 너무 과격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쯤 읽다가 네이버에 검색을 해서 그제야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여하튼 평소와 같이 읽은 책에 대해 기억 속에 오래 붙들고 싶은 대목들을 끄집어 내 보겠습니다.
p. 15 : 신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 존재의 완성을 이룬 자, 깨달음을 얻은 자는 누구인가? 그는 천한 사람이든 귀한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선한 자든 악한 자든 모든 인간 존재에게서 신을 발견하는 자라고 비하르 요가 학교의 창시자 스와미 사티야난다는 말했다.
p. 16 : 망고 주스
동전을 주워 갖고 달려오느라 주스가 든 비닐 봉지를 가게 카운터 위에 그냥 놓고 온 것이다. 나는 더없이 절망스럽고, 영혼까지 허무해져서 눈을 감고 자리에 쓰러졌다.
p. 39 : 내 영혼의 여인숙
"한 가지가 불만족스러우면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운 법이오. 당신이 어느 것 한 가지에 만족할 수 있다면, 당신은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오."
p. 40 : 내 영혼의 여인숙
"신이 준 성스런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하지 마시오. 그 대신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시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겠소? 당신이 할 일은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일이오."
p. 43 : 내 영혼의 여인숙
"행복의 비밀은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얻었는가를 기억하는 데 있소. 당신이 얻은 것이 잃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오."
p. 50 : 새점 치는 남자
자유는 강한 전염성이 있다는 것을 그도 어느새 알아차린 것이다. 새점조차 칠 수 없는 가련한 신세였다. 이 모든 것이 그때 날아가 버린 앵무새 탓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새점 치는 남자와 작별을 했다. 10여 미터를 가다가 뒤돌아 보니, 그때까지도 그는 앵무새 새장을 두 팔로 껴안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p. 51 : 성자와 파파야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이 삶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삶에서 겪게 되는 대강의 줄거리들을 나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라고. 자신에게 필요한 배움을 얻어 더 높은 영혼의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 그 파파야 세 개는 주고 가야지!"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루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파파야를 배낭 속에 넣어 갖고 온 것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p.55 : 성자와 파파야
"잘 가게, 하지만 잘 익은 파파야를 가져왔으니 내가 그대에게 한 가지 가르침을 선물해야지. 그대는 우리가 만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대가 우연이라고 말할 대마다 시바 신의 웃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어.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서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것이지."
p.84 : 이 반딧불이의 세상
내가 놀라서 바라보는 사이에, 소마는 그 반딧불이들을 모기장 안에 풀어놓았다. 반딧불이들은 모기장 곳곳에 달라붙어 하나둘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열일곱 살 소마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도,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내 눈동자 속에서도 아름답게 반딧불이들이 반짝였다.
미소를 지으며 소마가 또다시 외쳤다. "주그누! 순다르 주그누!(반딧불이! 아름다운 반딧불이!)"
p. 93 :영혼을 위한 음식
“당신이 진정한 작가라면, 종이 위에 적어 놓은 메모들이 아니라, 당신의 가슴에 새겨진 자신의 경험들을 갖고 글을 써야만 할 것이오.”
“잠든 사람은 깨우기 쉽지만,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가 없는 법이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그는 계속해서 잠든 척하고 있기 때문에 깨울 수가 없다. 그대. 차라리 깊이 잠들어라. 아니면 자신이 이미 깨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그대가 부처가 아닌 체 행동한다면, 누구도 그대를 부처이게 할 수 없다.”
p.101 : 작가 수업
그가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건너편에 앉은 여행자들더러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인도에서는 인도만 생각하고, 네팔에서는 네팔만 생각할 것!"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행자들은 서로 만나면 자신이 여행한 다른 장소를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인도에서는 네팔 이야기를 하고, 네팔에서는 인도 이야기를, 뭄바이에서는 콜카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살면서도 언제나 어제와 내일을 이야기한다.
p.105 : 거지 여인
신은 그 거지 여인을 통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서로 만져 주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이든 문둥병 여인이든 누구나 만져 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무도 만져 주지 않는다면 길에 버려진 망고 열매처럼 영혼이 쪼그라들어 버린다는 것을.
p. 112 : 지구별 여행자
때론 그런 것이다.자의든 타의든 어느 순간 우리는 아무도 없는 진공 상태 같은 곳에 던져진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곳에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p. 114 : 지구별 여행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집시들은 침묵과 평화로움 속에 한 지친 여행자를 말없이 받아들였다.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은 넉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중인지 조차 묻지 않았다.
p. 117 : 지구별 여행자
자유를 찾아 생각의 비좁은 골방을 떠나 세상 속으로 가는 것이나, 또 자유를 위해 스스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나 둘 다 삶의 여행임에는 다름이 없으리라.
p.131
그들은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중인지 조차 묻지 않았다. 그렇다, 지친 여행자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이미 많은 여정을 지나왔을 테니까. 힌디어로 '손님'은 약속 없이 찾아오는 사람이란 뜻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 그대로 손님이었던 것이다.
p. 146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점성술사는 내가 몇 살에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게 될 것인가를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삶을 찾는 일이라고. 그것이 곧 내 운명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이에요. 그땐 그것이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지금은 그 뜻을 알 것만 같아요."
p.160
"당신은 왜 해마다 인도에 오나요?" 내가 잡지를 덮으며 말했다.
"그만큼 인도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러자 뜻밖에도 잔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인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가 당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인도가 언제나 당신을 부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자꾸만 인도에 오게 되는 거예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p. 162 : 인도인 운전수
인도에서는 차량 사고로 사람을 죽이면 두 달 감옥에 2천 루피 벌금이지만, 소를 치어 죽이면 1년 감옥형이 1만 루피 벌금이다. 운전수들은 동물을 위해서는 속도를 늦췄지만 행인이나 자전거를 위해선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도의 교통 법규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작은 차가 큰 차를 피하라는 것이다.
p.215 : 신발도둑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똑같은 샌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니, 그럼 이것은 그 남자의 샌들? 멀쩡한 대낮에 다른 사람이 신고 있는 신발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그것도 냄새나는 신발로 위협까지 하면서! 이제야 그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웃어 대던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p. 224 : 나의 인디아 꿈
인도는 내게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했다. 세상을, 사람들을, 태양과 열에 들뜬 날씨를, 신발에 쌓이는 먼지와 거리에 널린 신성한 소똥들을. 때로는 견디기 힘든 더위와,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적당한 기차역에서 잠들어야 하는 어두운 밤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은 나 같은 여행자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p.247
인도 여행만을 고집함으로서 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생에선 내가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이었다. 그리고 굳이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까지 다 가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또 어떤 길들은 다음 생을 위해 남겨 둬야 할 길들이었다.
p. 260 : 나 자신
북인도 무갈사라이로 가는 밤 기차 안에서, 나는 앞에 앉은 한 늙은 사두에게 많은 것을 질문했다. 그의 이름과 고향과 니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 모든 것이 내게는 궁금한 사항이었다. 그런데 그는 내 질문에 대답만 할 뿐, 한 번도 나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당신은 나에 대해 알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은 심지어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조차 묻지 않는군요."
그러자 그 사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당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소. 난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소. 난 죽기 전에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만 하오. 지금까지 난 나 아닌 사람들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아 왔소. 당신도 늦기 전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시니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오."
p.267
인도에서 내가 배운 '행복론'은 다름 아닌 이것이다. 우리는 다만 행복해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자주 일깨워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단 하나의 길은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이미 갖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것, 삶을 사랑하고,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행복은 때때로 놀라움과 함께 찾아오며, 자기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곧 행복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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