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어느날 달과 6펜스』를 읽고...
가을 하늘을 머리에 이고 금요일 밤 아니 정확히 토요일 00:30분 서울발 대구행 열차에 올랐다. 이제 곧 졸업반인 내가 갑자기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또는 낭만적인 주말여행이나, 사색을 위한 그러한 여행은 아니었다. 단지 대구광역시에 있는 경북대학교에서 토요일 9시부터 구술 및 면접이 있기 때문에 기차에 올랐다.
금요일 오후 6시까지 강의가 있었고 그래도 명색이 구술고사 인지라, 부랴부랴 전공 노트 몇 권과 전공서적을 발췌해서 기차 안에서 살펴볼 심상으로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책상 한 쪽 구석에 ‘달과 6펜스’를 발견하게 됐다. ‘그것도 하나 있으면 좋겠지’ 의무감에 읽었어야 할 책을 아직도 읽지 못한 채 방치해 두고 있던 터라 주섬주섬 챙긴 노트 사이로 그것이 비집고 들어갔다.
서울역으로 가는 좌석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찰스 스트릭랜드 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만나서 반갑소 찰스 스트릭랜드 부인’ 그녀는 우리 주위에서 항상 볼 수 있음 직한 사람이었는데, 남을 위해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문학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증권거래소에 다니고 있으며 전형적인 주식 중개인이며 만나보면 지루하고 답답한 느낌의 사람과 같이 산다고 한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찰스 스트릭랜드를 잠시 뒤로 한 채로 책을 덮었다.
이번에 새로 도입한 객실(客室) 열차에 앉게 되었다. 지난번 집에 내려 갈 때보다 훨씬 무거운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다. 캐캐묵은 역사 안의 탁한 공기는 기차 안으로까지 계속 이어져 둔기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스트릭랜드는 모든 것을 버리고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떠났다. 열차와 함께 알 수 없는 어떤 중압감(重壓感)과 함께 움직이던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스트릭랜드는 나이 사십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났다. 기가 찰 노릇이다. 진실된 정열이라 치부하기엔 도저히 용납되지는 않았다. 내 상식으로는 인정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 시간까지는...
‘창조적 본능 같은 것이 당신에게 달라붙어 당신 자신의 파멸 뿐 만 아니라 당신 가족까지도 불행하게 만들었소. 정말로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존재가 있는 거요?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는 당신을 사로잡아 밤낮없이 당신의 마음을 뒤흔들어 결국은 당신을 지배하여 세속의 즐거움과 연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인내와 고통에 대한 수도원의 금욕 생활을 택한 것 또한 당신의 의지 아니오?’
새벽 04:30분에 대구에 도착했다. 칡흙 같은 어둠에 제법 한기(寒氣) 마저 더해 있었다. 이곳 역 또한 캐캐묵은 냄새들과 탁한 공기로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자네는 자동차의 축을 설계하는데 고려되어야 될 사항에 대해서 설명해 보게?”
......
“비행기의 프로펠러도 비슷하지 않은가?”
.....
이보시오 스트릭랜드씨 당신 때문에 내 일상도 엉망이 되는 것 같소, 도대체 당신은 뭘 하는 거요.
경북대 교정의 히말라야 싯다는 퍽 인상적이었다. 냉철한 지성 또는 강인한 의지 같은 것을 상징하고 있는 듯했다. 잠깐 벤치에서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스트릭랜드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요즘은 예술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서, 가족을 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자신의 꿈을 접고 가족에 둘러싸여서 자신의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더 많다. 그리고 그처럼 성격이 괴팍한 사람은 요즘 보기 드물다. 안타까운 현실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속이며 살고 있다.
저마다 가치기준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이건 의문이다. 예술이 그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일지언정 삶이 그토록 되어도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예술이 그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의 치열하고도 고달픈 투쟁이 예술을 통해 자아(自我)를 완성하기 위함이라면 최소한 보편적인 상식들은 외면을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어이 그러고 싶었다면 진작에 타히티 같은 곳을 찾아가서 그가 원하는 예술세계를 그를 이해하는 그곳 사람들과 할 게 아니었던가? 왜 그토록 선량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게 하는가? 말이다. 블랑쉐나 스트로프를 위한 나의 성토이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눈물겹도록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 같은 사람일 게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고통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 부다. 오히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점들에서 스트릭랜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주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겉모습과 속 모습 들을 다르게 하고 살면서 대부분의 일생을 겉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그는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속으로는 실속 차리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단지 그가 필요할 때만 나타나서 돈을 꾸어가곤 하는 게 그의 이기심일 게다. 솔직히 스트릭랜드의 행동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점에서는 최소한의 위선도 지니지 않았던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더크 스트로브와 그의 아내 블랑쉐에게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지극히 단순한 감상주의자인가 보다. 어떤 이는 이 책을 이제까지 자기 생애에서 제일 감동 깊게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으며 단지 나로서도 아직은 수긍이 가는 부분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
“난 과거 같은 건 생각지도 않소 내게 중요한 건 영원한 현재일 뿐이요.” 그리고
“사랑과 예술 둘 다 누릴 만큼 인생은 길지 않으니까.” 그의 말이다.
경북대 등나무 밑의 벤치였다. 토요일 오후라서 사람들이 많이 없을 줄 알았지만 지방의 유수한 종합대학이라서 많은 남자들, 여자들, 연인들, 운동하는 사람, 나처럼 책을 손에 들고 나무 밑에 앉아 있는 사람, 음식점 배달 종업원 등 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이해하려고 노력중이다. 블랑쉐 스토로브의 행동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그럴듯한 설명을 붙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그에 대한 나의 관념과 그토록 상반되는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친구의 신의를 그토록 무자비하게 배신했다던가. 남의 행복을 희생하여 자신의 일시적인 기분을 만족시키는 행위를 조금도 주저 없이 했다던가 하는 것은 그의 경우라면 그 자신의 기준에 의하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의 행동은 나 또는 저기 거닐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타당한 윤리, 규범, 상식들을 배제한 원초적 이기심들만 똘똘 뭉쳐져 있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 상주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스트로브는 세속적인 자기 욕심에 얽매여서 블랑쉐를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스트로브의 행동으로부터 부끄러운 우리들의 모습을 단편적 볼 수 있었다. 갑갑한 그의 행동에 숨이 막힐 따름이었다.
서울에 올라오기 위해 대구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 앞에는 40~50대로 보이는 여윈 아저씨가 남루하고 불쾌한 냄새로 주위를 위태롭게 하는 분이 주무시고 계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문득 지나간 생각에 ‘스트릭랜드의 모습이 비슷하지 않았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를 증오하고 경멸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의 측은 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기란 심히 힘든 일이었다. 그의 캐캐 묵은 냄새, 고개를 뒤로 늘어뜨려 내가 읽던 윗 페이지를 덮었고 그의 총체적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책을 접었다. 예술가니까 그의 예술 세계만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용서가 가능한 것인가? 예술가의 고뇌 로운 삶이 그토록 처절해야만 위대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말 저녁 서울행 열차는 만원이었고 입석을 한 사람들 또한 많았다.
“나는 사랑 따위는 원하지 않소 내겐 그럴만한 시간도 없고요. 사랑은 인간의 약점이오”
만약에 어느 날 내가 돈오열반(頓悟涅槃) 에 이르게 되어 나에게도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가 어떤 건지 느끼게 되고 보편타당하고 상식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비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예술이던, 문학이던, 사랑이던 - 되었다면 현실에 타협하지도 않고 은둔자 생활의 고독과 여타 다른 고뇌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스트릭랜드 그의 삶은 한 예술가의 처절한 삶이고, 내 가슴 아주 한쪽 모서리에 처박혀 있어서 도저히 끄집어내지도 못할 미세한 가시다.
나의 삶에 있어서는 단지 지금은 달도 6펜스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스트릭랜드는 인간에게는 동물적인 육체의 세계와 탈 동물적인 정신의 세계인 예술의 세계 모두가 필요한 것임을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육체와 정신 혹은 영혼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 동물적인 육체성은 생명의 동력인 동시에 또한 그 동력에 힘입어 다스려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그는 보여주었다. 또한 인간이란 육체적인 측면만으로도 살 수 없고, 정신적인 측면만으로도 살 수 없는 두 측면이 모두 필요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열차는 청량리역을 지났고, 차창 밖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멀리서 유람선이 떠있는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 위를 달리고 있었다. 언제쯤 본 삼류 소설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온 것 같은 장면이었다. 수면 위에 비취는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언젠가 한번쯤은 선상(船上)에서 다리를 한번 바라다보리라고 다짐했다.
요컨대 우리들은 '달'이라는 영혼 그리고 예술 세계와 '6펜스'라는 육체, 세속적인 가치의 세계를 모두 가져야 된다. '달'만 있고, '6펜스'는 없어도 되는 것은 삶이 아님을 찰스 스트릭랜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사실이며, 나의 삶인 것이다. '달'을 바라보면서 '달'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지만, 동시에 우리들의 삶은 '6펜스'도 요구하고 있는 것일 게다.
무궁화호는 나의 바동거리는 삶이었다. 이번 기차여행의 목적은 현실과 아주 의연한 타협의 결과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마도 손에는 2펜스쯤 쥐고, 밤하늘의 구름 가득 덮인 초승달의 끝 언저리를 바라보는 정도라 하겠다.
이제 20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나는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한다.
2001년 10월 17일
"나로선 과연 에이브러햄이 일생을 망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행하고 자기 기분에 꼭 맞는 환경 속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일생을 망친 것이고, 연수입 1만 파운드의 유명한 의사가 되어 미인 마누라를 얻어 사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요컨대 그것은 자기가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 본문 중에서(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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