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 번째 책 : 인생의 의미
올해 마흔세 번째 책입니다.
저자가 쓴 글입니다.
: "부유한 사람들은 큰 위기가 있어야만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아늑한 작은 어항에서 헤엄치던 사람이 었는데 갑자기 심각한 암 진단을 받았다. 암으로 인해 나는 2년 넘게 죽음의 대기실에 내던져졌다. 건강을 완벽하게 되 찾지 못할 것이고 삶은 예전과 같지 않겠지만, 나는 스틱스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옮긴이)의 진흙투성이 기슭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며 뭔가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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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덕스러운 관계들과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으며 우리 주위에도 대단히 많은 관계가 존재한다.
놀랍게도 아직 세상은 사람의 껍질로 그 사람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순간순간의 경험이 그것이 아니라고, 껍질보다는 껍질 사이에 더 많은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손을 들면 다섯 개의 손가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손가락들 사이의 수 많은 관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엄지는 검지 없이는 거의 쓸모가 없다. 유기체들은 모든 사람, 모든 사람들 사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때 존재하며, 그로부터 우리는 삶의 충만함을 얻고 더 큰 생태계에서 존재할 수 있다.
차이가 없다면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다. 이는 인간이 관계의 존재임을 암시한다. 뉴기니 산악지대의 한 마을에서는 숨이 멎었을 때가 아니라 모든 부채가 청산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마무리되었을 때 비로소 사망했다고 간주한다. 장례식은 그 마을에서 가장 의미 깊은 행사다. 고인의 가족과 지인들은 고인과 연결된 수많은 유대를 끊고 이로 인한 출혈을 막기 위해 또 봉합을 해야 한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식물은 혼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식물은 같은 종이든 다른 종이든, 자신을 강화시키는 다른 식물 근처에서 번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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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의미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권리와 의무가 가득 찬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살 때는 항상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돌보는 사람을 우선해야 해서 출장을 취소하고 출세의 야망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 두 가지를 모두 갖는 것은 항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버릴 필요가 없는 사람은 용서와 겸손, 감사의 능력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철학이 가진 보편적 문제점은 플라톤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철학자 대부분이 미혼 남성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론을 넘어서는 것들,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사랑이라는 가느다란 실, 그 실이 끊어질 때 열리는 깊은 심연, 배신당했을 때 분출되는 비이성적인 분노, 폭풍이 가라앉은 후 사람들을 다시 연결시키는 끌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단지 부부나 연인뿐만 아니라 형제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혹은 그에 준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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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만 있는 삶 또한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받는 만족감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최신 인공지능의 발전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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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의미
이런 사람의 등장이 때로는 에로틱한 열정으로 발전 할 수 있는데 지극히 인간적인 이 관계를 폄훼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여기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서양인들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불륜을 쉽게 생각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은 사랑에 기초한 결혼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찰나의 끌림이라는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다. 반면에 중매 결혼은 잘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낮은 온도에서 시작하여 점차 따뜻한 애정의 냄비로 성장한다고 여긴다. 멕시코에서는 새신부에게 결혼 첫해 남편과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항아리에 동전을 넣으라고 한다. 그리고 첫해가 지나면 관계를 할 때마다 항아리에서 동전을 꺼내라고 한다. 그러면서 항아리가 절대 비워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냉소적 으로 결론 내린다. 사랑과 결혼으로 엮인 관계에 대한 사회 문화적 인식은 이토록 다르면서도 또 공통점을 갖는다.
내가 관계에 의해 창조되며 그 관계 속에서 계속 재창조된다는 깊이 있는 식견에 이미 도달했다면, 자아실현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개인주의는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 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혼을 한 많은 사람들이 이혼 후 자신의 삶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된 것에 놀라움과 실망을 표한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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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선한 존재가 되고 싶지만 이마의 번개 흉터에서 알 수 있듯 자신 안에 악한 무언가가 있음을 알고 있다. 볼드모트가 부모를 살해하고 해리를 죽이려다 실패했던 어린 시절에 생긴 흉터다.
호그와트 입학식 때 분류 모자는 해리의 기숙사를 두고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사이에서 결정을 망설였다. 슬리데린은 오랫동안 흑마법과 어둠의 세력에 장난삼아 손을 대는 것으로 유명했던 반면 그리핀도르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해리는 결국 그리핀도르로 갔지 만 그때부터 의심이 시작된다. 결국 해리는 교장 덤블도어에게 조언을 구한다. “선생님, 제가 선한지 악한지 모르겠어요. 각기 다른 힘들이 저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 아요. 제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교장 선생님은 한없이 깊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길고 흰 수염을 조심스레 쓰다듬고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해리, 그건 너에게 달려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손꼽히는 이 명장면은 아마 북아메리카에 전해지는 두 늑대 신화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이 이야기는 미국 남동부, 플로리다 북부, 테네시 남부의 삼림 지대에서 살던 체로키 부족에게서 비롯 되었다. 반백의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말한다. “내 안에는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두 마리 늑대가 있지. 하나는 악이란다. 악한 늑대는 분노이자 시기이며 슬픔, 후 회, 탐욕, 오만, 자기 연민, 죄책감, 원한, 열등감, 거짓말, 거 짓 자부심, 이기심이지. 두 번째는 긍정적인 감정이란다. 이 늑대는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조화, 겸손, 선함, 친절, 공감,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지.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싸움을 하는데 그런 싸움이 네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단다." 아이가 묻 는다. “그래서 누가 이겨요?" 노인은 답한다. "그건 내가 누 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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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결과로 일부에서는 낯선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이 낯선 사람으로부터 뺨에 키스를 받는 것과 비견할 만한 비위생적인 행동으로 인식했다. 미국의 경우 팬데믹 동안 사회적 접촉 이 금지된 것은 당연했는데 그들은 이미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을 때도 악수를 막은 바 있다.
알샤마히에 따르면 악수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기존에 알려진 명시적인 장점뿐 아니라 화학적 신호를 전달하고 냄새와 물리적 접촉으로 인한 도파민 생성을 자극하는 것에도 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악수는 두 사람 사이의 더 많은 가능성을 향한 도약대 역할을 하며 두 사람이 일체된 경험을 선사한다
관계에는 생래적으로 인간을 교화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흔한 일 이며 권리를 신성시하고 옹호하고 그것을 위해 싸운다. 하지만 의무에 대해서는 훨씬 덜 이야기한다. 보통 자신의 약점과 취약성을 인식해야만 타인에게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 사람들이 당신을 키우고 지원하고 작은 호의와 오랜 우정을 베풀고 절망이나 죽음으로부터 당신을 구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와 겸손과 같은 단어의 의미를 가르칠 수 있고 깊은 뜻을 배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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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의미
• 젊은 날의 갈증과 갈망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인간은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모든 갈망을 하나로 응축시킨다. 갈증으로 죽을 것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경제학 수업에서 수익률 감소의 법칙을 보여주는 사례로, 안갯속 카페의 윤곽이 보일 때까지 사막을 기어가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사막을 기어가는 그는 첫 번째 물병에는 기꺼이 매우 비싼 값을 지불하고 두 번째 물 병에도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지만 세 번째 물병에는 보통의 시장 가격 이상을 지불하지 않는다.
1981년 봄, 이스탄불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유럽 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나는 온실에서 일하고 번 돈으로 여행자 수표를 끊은 뒤 생기 없고 조용한 내 고향 퇸스베르그를 떠나 여행을 시작한 터였다.
바람이 불고 추웠던 1월의 어느 날, 페리에 올라 오슬로에서 좁은 피오르를 벗어나 넓은 바다로 진입했을 때 나는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아찔한 자유로움에 취해 있었다. 세상은 활짝 열려 있었고 나의 자유는 완벽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패기 넘치는 청춘이었다. 인터레일(유럽인을 위해 일정 기간 일정 지역에서 마음대로 국유 철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유럽의 기간제 승차권-옮긴이)을 이용해 남유럽을 가로지르는 몇 달간의 여행은 내 인생의 가장 강렬한 의미로 남을 터였다.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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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 지나고 이스탄불에 도착하기 전,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맥주를 마시며 프로그 록(재즈 및 다른 장르의 음악적 요소를 포함하는 록 음악-옮긴이)을 들었고, 파리의 한 공원에서 하우스 와인을 몇 모금 마시고 세계 최고의 햄과 함께 바게트를 먹었으며, 루브르 박물관과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을 방문하고 비엔나 대신 리스본을 가야 한다는 몇몇 프랑스 히피들을 만났다. 당시 소련만 아니면 유럽은 기차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들에게 설득된 나는 몽파르나스역으로 가서 리스본행 장거리 열차에 몸을 실었다. 보르도 남쪽을 거쳐 스페인 국경 북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열정적이고 친절한 두 명의 미국인과 대화를 시작했다. 편안히 좌석에서 수다를 떨며 졸다가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도난당하고 말았지만. 그렇게 낙담한 미국인 친구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얼마지 않아 나는 리스본에 도착하여 숯과 염소 똥과 짙은 담배 냄새를 맡으며 큰 잔에 갈라웅(우유가 들어간 커피-옮긴이)을 마셨다.
리스본의 감각적인 인상들과 나 사이에 새로운 실이 엮이고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리스본 특유의 푸른 타일 로 장식된 건물과 벽에 그려진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래피티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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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의미
기센데?"라고 놀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번째 병을 열고 그것마저 단숨에 마셔버렸다. 물론 속도는 첫 번째 병 보다 좀 더 느렸을 것이다. 세 번째 병이 있었다면 그 병은 방에 두고 나왔을 것이다. 갈증이 해소되자 갑자기 주의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결핍과 갈망은 사라졌다.
거품이 이는 청량하고 달콤한 검은색 음료가 목구멍을 씻으면서 내려가 속을 적시는 동안, 몸은 가뭄 끝에 비가 내린 땅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비가 매일 내렸다면 땅은 그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자연을 담은 영화 속 슬로우모션이 생각난다. 우선 카메라가 건조한 풍경에 약 30분 동안 머물면서 음울한 성우 목소리가 덧입혀진다. 지평선엔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코끼리가 절망적으로 먼지를 발로 차고 가젤은 근처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무감 하게 서서 꼬리로 파리를 기계적으로 쫓는다.
하지만 곧 지평선에 검은 구름이 만들어지고 첫 빗방울이 떨어지면 이 건조한 땅은 곧 물에 흠뻑 젖어 동식물이 가득한 비옥하고 푸른 평야로 부활한다. 얼어붙은 타이가(북 반구 냉대 기후 지역의 침엽수림-옮긴이)가 따스한 봄 햇살을 꿈꾸듯 메마른 들판은 물을 갈망한다. 달콤한 검은색 탄산 음료를 마시니 바싹 마른 내 몸의 조직과 근육이 밤새 불린 마른 콩처럼 수분으로 촉촉하게 채워졌다.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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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영양분이 공급되고 뇌에 활력이 생기고 몸이 채워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도 나는 오랜만에 화초에 물을 줄 때면 이때의 일을 생각하곤 한다. 최근에도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년 전 남극에 갔을 때 자신도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남극의 하루는 생각 보다 무섭고 위험했다면서 추위와 강풍, 공허, 근육통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느낄 정도였는데 이를 견디게 해준 것은 텐트 안에서 마시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었다고 한다. 특별한 것이 없는 인스턴트 코코아일 뿐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따뜻한 코코아의 달콤함과 따뜻함, 순수한 아늑함으로 어린 시절 고향집의 평온한 일요일 저녁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별것 아닌 인스턴트 음료 하나가 이렇게 하루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고 친구는 전했다.
갈증을 모르는 사람은 물의 가치를 모른다. 결핍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햇볕이 강한 모리셔스에 여행을 온 북 유럽의 관광객들의 바람은 한 가지다. 춥고 우울한 날씨와 반대되는 따뜻한 햇빛과 기온이다. 여행지에 비가 내린다면 그 갈망은 더 강해질 것이다. 나는 지금 열대성 폭우가 내리는 모리셔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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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의미
지루함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1970년대에 자랐고 1980년대에 성인이 된 우리에게 지루함은 결핍이라는 생산적인 감각을 자극했다. 청량음료와 과자는 특별한 때에만 맛볼 수 있는 것이었고 여행은 돈이 많이 들고 복잡하고 느렸다. 어렸을 때 나는 거실 바닥에 누워 지도책을 들여다 보며 열대 섬,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가진 지역, 이상한 동물이 사는 계곡에 대한 공상에 빠졌다. 결국 나중에 몇 곳을 실제로 가보았다.
연휴에 인터레일 여행을 떠날 때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암스테르담의 레코드점에 들러 공, 햇필드, 더 노스, 헨리 카우 등 밴드의 LP를 배낭에 가득 채우기 위해 경비를 최대한 아꼈다. 당시 나에겐 평범하지 않은 모든 것이 중요한 사건이었고 밋밋했을 내 삶의 곡선에 눈부신 포인트가 되었다. 탐나는 음악과 나를 연결하는 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결핍은 기대감으로도 이어졌다. 열다섯 번째 생일에 용돈을 받자 나는 전속력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 밴드 젠틀 자이언트의 최신 음반이 들어왔다는 동네 레코드 가게로 달려 갔다. 앨범은 지난 가을에 발매되었고 내 위시리스트에 한참이나 있었는데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지 못했던 터였다.
[내게 있어서 오래전 월간 만화 잡지에 끼어 있던 드래곤볼 부록이 그랬고, 미스터 빅의 카세트 테입이, 그리고 국내 최초 출시일에 서울시내에서 줄서서 구입한 EOS 10D가 저자와 같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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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의미
아버지는 젠틀 자이언트를 리틀 자이언트로 잘못 기억하셨고 존재하지도 않는 리틀 자이언트의 음반을 구하기 위해 온갖 레코드 가게를 뒤지셨다.
젠틀 자이언트의 기념비적인 앨범 <인터뷰>를 처음 들었을 때의 경험은 아직도 내 몸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흥겹지는 않지만 뉴런에 불을 붙일 정도의 리듬감은 있다. 이 앨범이 젠틀 자이언트의 첫 손꼽히는 음반은 아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너무나 고대했던 나에게는 세계 최고의 명반이었다. 지금까지도 사춘기 시절의 기억을 자극하고 수십 년 전 뻗어 있던 감각의 실을 팽팽하게 활성화시키는 귀하고 특별한 음반이다.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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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논리가 인간의 활동을 너무 많이 끌어들였다. 모든 것들이 매사 비교당하고 평준화된다. 질적 차이는 스프레드시트의 숫자로 환산된다.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이 점점 소비 쪽으로 향하고 있다. 과거 종교가 차지했던 틈새를 소비주의가 채우고 있다. 광적인 소비는 지구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 자신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한다. 종교의 장점 중 하나는 믿음이 오래, 웬만하면 평생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새로운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얻는 의미는 깨지기 쉽고 일시적이다. 풍요로운 사회의 역학은 소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자마자 더 많은 소비를 하라고 명령한다. 현대 사회의 소비자는 산위 의 시시포스와 같다.
곤도 마리에의 방식은 성가시긴 하지만 그래도 충분한 논거가 있다. 진지하게 생각하면 이것이 사실임을 모두 아 는데 실제로는 계속 모르는 척을 한다. 고대인의 말을 아무리 높이 평가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정작 그들의 철학과 가치는 실제 생활에서 의미가 거의 사라졌는데 말이다. ‘일곱 개 이상의 물건을 소유하면 그 물건들이 당신을 소유하게 된다'는 노자의 격언을 통해 우리는 소유에 의존하는 삶은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88
두 번째 의미
손대는 것마다 금으로 변해 굶어 죽었다는 탐욕스러운 미다스 왕의 신화를 통해서 도 같은 교훈을 배운 바 있다. 캐나다의 서스캐처원부터 일본의 도쿄까지 모든 문화에서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은 물건의 획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진정한 철학자는 부자가 될 수 있을 만큼 똑똑하고 부자가 되지 않을 만큼 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음악, 끝없는 우주의 확장, 종교의 깊이, 나와 너 그리고 생태계의 신비로움 등이 선사 하는 거대한 의미를 뒤로 하고 우리는 소비의 러닝머신에서 미친 듯이 달린다.
학생 시절 한 쿠르드족 이민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당나귀로 운반할 수 있는 양만 소유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말했다. 가축을 기르는 유목민인 그들에게 신선한 목초지 외에는 부족한 것이 거의 없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다니는 삶이다.
몇 세대 전만 해도 유럽에서는 물건에 얽매이지 않는 유랑민의 자유를 높이 평가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다. 내 경우에는 몇 주에서 길게는 1년까지 이어지는 인류학 현장 조사에 내가 운반할 수 있는 이상의 물건을 절대 가져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언제나 책이나 여분의 옷 등 불필요한 물건을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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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르투갈 시장에서 더 저렴한 모델을 발견했다. 진짜 워크맨보다 크기가 컸지만 카세트 플레이어에 FM 라디 오가 추가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살 생각을 하고 집에서 카세트 테이프 10개를 가져왔다.
호시우 역 근처에서 짙고 향긋한 포르투갈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레드 제플린의 〈피지컬 그래피티〉 테이프를 슬롯에 꽂았다. 신비롭고 암시적인 노래 〈카슈미르>의 기타 리프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갈 길을 따라 리베르다드 대로를 향하는 내 발걸음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브라이언 아담스와 엑센트 느낌]
왜 우리는 그런 세부적인 것들을 기억할까? 오랫동안 갈망이 축적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하이라이트가 드문 일상에서 그런 작은 기억들이 유성처럼 반짝여서 그렇기도 하다. 유성은 몇 초 만에 사라지지만 믿음직한 금성은 그렇지 않다. 결핍은 때때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실로 인해 빛나는 경우가 더 많다.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있고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던 궁핍한 시절에는 지루함도 소중하고 탐나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 틀린 것 같다. 갈망에 대한 갈망은 자아를 찾는데 있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입을 열면 벽에, 귀를 열면 머릿속에 지루한 메아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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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의미
• 지금 당신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위기라는 말을 만들어낸 아테네인들이 보통 위기를 언급한 상황은 의학적인 맥락에서였다. 크리시스(위기)는 높 은 열을 뜻했다. 당시에는 항생제도 백신도 없었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면 가능한 일이 두 가지뿐이었다. 죽거나 회복하는 것. 회복했다면 무언가를 배웠을 것이다. 생존자는 무엇을 배웠을까? 철학자 아르네 요한 베틀레센 Arne Johan Vetlesen 이 표현했듯이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함으로써 더 현명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베틀레센은 즉각적인 욕구 충족은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지 못한다고 믿었다.
부유한 사람들은 큰 위기가 있어야만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아늑한 작은 어항에서 헤엄치던 사람이 었는데 갑자기 심각한 암 진단을 받았다. 암으로 인해 나는 2년 넘게 죽음의 대기실에 내던져졌다. 건강을 완벽하게 되 찾지 못할 것이고 삶은 예전과 같지 않겠지만, 나는 스틱스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옮긴이)의 진흙투성이 기슭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며 뭔가를 배웠다.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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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마법 같은 푸르름, 부엌의 흙냄새 가득한 허브에서 풍기는 생명의 향기, 설탕 그릇으로 향하는 개미들의 결의에 찬 행진, 남은 생애 따뜻한 안식을 찾는 내 늙은 고양이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코냑에서 느낄 수 있는 바닐라, 오크, 캐러멜의 풍미는 주류회사의 술책이므로 아에 큰돈을 들여 정말 좋은 술을 사거나 그게 아니면 이베리아나 남아 프리카의 정직하고 저렴한 브랜디를 선택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와인을 고를 때는 포도 품 종이 생산지보다 더 중요하며, 잘 모를 때는 카베르네 소비 뇽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동 의 자유와 건강이 결핍되는 현실을 깨달으면서 내 안의 실 들이 단단해지고 새로운 실도 자아졌다. 스쿼시 코트의 직 사각형 바닥에서 나오는 실은 끊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위기는 필사적으로 탈출하려고 창문 앞에서 윙윙거리 는 파리나 파르메산 치즈와 함께라면 뭐든 좋다는 지식인 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일종의 여과기다. 위기를 통해 보풀 은 불어 날려보내고 극히 중요한 것은 남기게 된다. 다만 여 과기는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지 않으면 막히고 이렇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기가 준 가르침을 잊기에 주의해야 한다.
챕터 서두에 언급했듯, 건강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소 원이 있지만 병든 사람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소원이 있고, 자유인에게는 여러 가지 소원이 있지만 죄수는 하나의 소원 에 만족한다. 바라던 모든 것을 가진 자는 순간 가난한 자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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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의미
국가가 없는 약소 민족들이 북극의 반 황원이나 깊은 열대우림과 같이 지구의 변두리로 밀려난 역 사적 이유는, 농지를 확장하려는 탐욕스러운 농장주부터 성 장을 위한 성장에 전념하고 뭐든지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국가 정부까지 다양하다. 국가와 자본주의의 거대한 선전은 소비만능주의에 대한 대안을 없애버린다. 이는 완전히 잘못 된 방향이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타인 의 관심과 시간,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믿을 수 있는 실, 나 자신을 알게 되는 느린 시간 그리고 그 실에게 세심한 주의 를 기울이는 것이다.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인간은 수천 가지의 삶을 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결국 하나의 삶만 살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 기심과 지식은 나 자신을 아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내 가 살 수 있었던 다른 삶에 대해서도 배움과 깨달음을 준다. 이로써 내 안의 실이 무한대로 확장하여 이제껏 공유해보지 못했던 기억과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장소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힘이다. 이런 경험을 공유할 능력이 없는 인공지능이 애처롭게 여겨질 지경이다.
결핍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빛을 잃었고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잘못된 길잡이이자 기만적인 실로 여긴다. 암울 한 시대에 희망의 중요성을 역설한 에른스트 블로흐에게서 교훈을 얻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희망이 꼭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보통 내 주변 세계 안에서 존재하니까.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테러보다 내 아이가,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보다 당장의 대출금이 더 중요하듯 말이다. 세상이 정도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보통의 삶을 거부하면 희망의 화살이 아래로 향한다. 그런 상태는 의미도 없고 삶의 질을 높이지도 못한다. 어둠을 저주하기보다는 촛불을 켜는 것이 항상 더 나은 법이다.
꿈과 희망은 비현실적일지라도 결국엔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낙관주의에 불을 붙인다. 상상력을 위한 트램펄린인 꿈과 희망은 시야를 확장시켜서 우주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우리의 능력, 지금 이 순간의 의미 그리고 먼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 삶을 이끄는 잠재력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 맥락에 서 느림이 인생의 네 번째 의미다.
꿈
149
과열된 현대 세계는 속도에 눈이 멀어 물질적 풍요를 주된 목표로 삼기 때문에 미세한 프로클로로코커스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나친다. 삶의 전체성과 생명의 그물망을 성찰할 때는 다른 가치관, 다른 종류의 지식, 느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이익을 얻는 일에 아드레날린을 내뿜는다. 그 과정에서 루나족이 당연하게 여겼던 지혜, 즉 누구도 자연을 소유할 수 없으며 존중과 겸허한 마음으로 주 변 환경에 다가가야 한다는 중요한 지혜를 잃고 말았다.
느림은 필요불가결하다. 느린 리듬을 향한 발걸음에는 방목장을 돌아다니는 소의 시간 감각에 나를 맞추거나, 핸드폰을 넣어두고 끝없는 파동의 브루크너 교향곡을 듣거나, 라이밍을 예술의 한 형태로 도야한 트리니다드 사람들처럼 세련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는 것들이 모두 포 함된다. 신용카드를 늘 가지고 다니는 도시의 사람들은 느리게 사는 데 필요한 기술을 다시 배워야 한다. 어떤 일들은 브루크너나 말러의 음악을 듣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이 천천히 시간이 흘러야만 성취할 수 있다. 나무를 키우 는 것도 마찬가지다.
164
네 번째 의미
11월 초가 되면 솔잎으로 배를 채우고 동면에 들어가는 무민(스칸디나비아반도 전설에 등장하는 트롤로 작가 토베 얀손 이 그림책에서 캐릭터화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옮긴이)처럼 따뜻한 차를 마시고 따끈한 목욕 후에 포근한 담요를 덮 고 실내에 있는 것이 안락하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무 민은 남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스너프킨이 개울을 가로지 르는 다리 위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에 맞춰 하모니카를 연주할 때가 되면 비로소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열대를 선호하는 인간에게 모든 것이 죽고 얼어붙는다는 상황은 참으로 슬프다. 그러나 일 년 내내 봄인 쿤밍이나 제대로 된 겨울이 없는 리스에서는 최북단에서 봄이 마침내 찾아왔을 때 느끼는 희열을 느낄 수 없다.
인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억지로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잠든 나무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즐긴다. 이처럼 걷기는 날씨를 능가하는 실존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더구나 우리의 신진대사는 반년 동안 몰아서 자는 동면을 허용하지 않는다. 탐험가 엘링 카게 Erling Kagge는 걷기의 의미에 관한 책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모든 것을 간과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느린 시간
167
JFK와 닐 암스트롱의 경우 조상이 아일랜드 이민자였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파낼 수 있는 인상과 지식의 조각이 많을수록, 맨 아래 서랍에 숨겨져 있거나 먼지가 많은 구석에 있다 해 도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조각들이 많을수록, 다시 말해 우리가 세상을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많은 세상이 우리를 소유한다. 나를 연결하는 기억의 실들이 많을수록 당신은 주변 환경과 더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의미는 이런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람과 나 사이에 공통된 지인이 있으면 무척 기쁘게 마련이다. 식민지 시대 이전의 오스트레일리아에 서는 원주민 둘이 사막에서 만났을 때, 서로가 어떻게 연결 되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족보와 신성한 장소의 이름을 오래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 연결의 결과에 따라 함께 사냥을 떠날지, 각자의 길을 계속 갈지, 아니면 서로에 게 창을 겨눠야 할지를 결정했다. 과거는 죽음과 우정을 결정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현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느린 시간
179
크고 튼튼한 도토리나무가 자랄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약 500년 후 들보가 삐걱거리며 갈라지기 시작했을 때, 수석 정원사는 강가에 위풍당당한 도토리나무 군락이 있는 것 을 발견했다. 들보는 교체되었다.
크르즈나릭은 이 서사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손자의 손자들보다 더 나아간 시간을 내다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얘기하는 교훈으로써 이 에피소드를 썼을 것이다. 먼 미래와 연결되려면 주차 위반 딱지와 임박한 마감일 등에 대한 걱정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다. 풍요와 가속의 명령에 둘러싸인 불 안한 사람보다 케랄라 농장 노동자인 로히니에게 더 발달된 능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두 가지 큰 모순에 빠졌다. 하나는 자신의 삶보 다 더 큰 시간적 지평으로 살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 다. 세계기상기구IPCC와 세계 각국 정부가 기후 변화에 대 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생각해보라. 기후 변화로 인한 지 구의 위기가 2030년부터라고 하던 것이 2040년이 되었고 지금은 2050년이 되었다. 2050년이라니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기에 너무 먼 미래처럼 보인다.
느린 시간
189
오늘을 즐기는 것과 장기적인 안목을 갖는 것은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능력은 먼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과는 다른 종류의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 둘 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방식이며 둘 다 꼭 필요하다. 역사에 깊이가 더해지려면 강렬한 순간이 필요하며, 그것이 기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더 큰 무언가가 된다. 모든 사건은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일어나고 세상은 빠른 시간과 느린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조미료에 비유할 수 있다. 조미료가 없어도 요리를 할 수는 있지만, 조미료가 들어가면 아무리 밋밋한 요리도 맛있게 만드는 감칠맛이 더해진다. 가장 맛 있는 순간은 번개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찾아오는 법 이다.
순간
207
• 삶의 기쁨을 느끼는 작은 지점들
인생의 소금은 삶을 더 잘 버틸 수 있도록 일상에 작은 풍미를 더한다. 친구나 연인과 즐기는 활기찬 산책이나 멋진 연극 공연, 즐거운 점심 식사일 수도 있고, 저녁 식사 후 마시는 코냑 한 모금, 소중한 사람의 예상치 못한 미소, 좋아하는 축구 선수의 멋진 골, 태피스트리에 더해지는 수천 가지 실일 수도 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프랑수아즈 에리 티에 Françoise Héritier가 2012년 80대의 나이에 쓴, 인생의 소금에 관한 책 《달콤한 소금Le sel de la vie≫이 그런 내용이다.
서아프리카 연구자이자 젠더 이론가, 파리 사회과학고 등연구대학의 학장으로서 커리어를 끝내고 에리티에는 보편적인 삶의 주제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80대에 이 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인생에 대한 책을 쓰고 싶 었을 것이다. 에리티에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연상법을 따라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을 나열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그녀는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 잊고 있었던 흥미로운 일들을 열두 가지 떠올린다. “웃음, 시시콜콜한 모든 것에 대한 대화, 편지,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식사, 바에서 마시는 맥주, 햇볕을 쬐며 마시는 커피, 그늘에서 즐기는 낮잠,
208
다섯 번째 의미
수집품(돌, 나비, 상자, 또 뭐가 있을까?), 가을 공기의 신선함이 남기는 여운, 선베드, 세상이 잠든 밤에 깨어있는 것, 오래 된 노래의 가사를 기억하려 애쓰는 것, 맛과 냄새에 대한 기 역, 사진첩 넘기기, 고양이와 놀기, 상상 속의 집짓기, 예쁜 포장지 만들기, 멍하니 담배 피우기, 일기 쓰기, 춤추기(오! 춤추기!), 외출, 파티 열기, 새해 콘서트 듣기.……….”
이외에도 인생을 기쁘게 하는 작은 것들은 많다. 그녀는 축구나 스크래블 게임, 신발 신어보기, 조깅이나 페탕크(직 경 10cm 정도의 철구를 던지는 게임-옮긴이) 연습 등을 즉흥 적으로 언급한다. 80대 학자의 풍요로운 추억 속에서 소소 하고 흥미로운 기억들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인생은 제로 섬 게임과는 정반대다. 식사를 하는 동안 식욕은 커지고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할수록 더 많은 것이 남는다.
에리티에가 얇고 작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사소한 것들, 순간의 작은 즐거움이다. 오랜만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4월의 어느 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핥았을 때, 수영장 물 위에 얼굴에 햇볕을 쬐며 누워 있을 때 귓가에 샴 페인 같은 기포가 터지는 느낌, 갑작스러운 포옹, 새로운 코드 진행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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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작은 깨달음
놀라움과 호기심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완전하게 통제되고 엄격하게 계획된 삶을 고집하는 사람은 '놀랄 권리' 를 포기하는 셈이다. 새롭고 예기치 못한 것을 경험하는 놀라움을 버리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자기 멋대로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호기심이 없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은 어떤 것도 경이롭게 여기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밤하늘의 무한한 별을 바라보면서 위엄에 눌려 스스로 작은 먼지가 된 듯한 느 낌을 받지도 않는다. 그들은 농담에도 웃지 않으며 실제 삶 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죽고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에 대한 철학적 질문처럼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할 수 없다.
새로운 문을 열 때 마주하는 놀라움은 느닷없이 찾아오며 우리는 이때 감정적이고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지혜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것은 이런 작은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조숙한 스무 살 젊은이보다 사려 깊은 칠순 노인의 말을 듣는 것이 더 보람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경험으로부터 의미 있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다.
233 순간
불리는 칸트는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말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거듭 말하지만 어차피 그런 일은 불 가능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모든 가능성 중에서 어떤 진실을 선택 해야 하는가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괜찮은 인간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필터를 정기적으로 청소하여 쭉정이를 계속 솎아내야 한다. 균형과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정신병동에 입원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거짓말로부터 거리를 두라는 몽테뉴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회색 영역을 무시했다. 정직에는 여러 가지 맛이 있다.
'균형
273
이 책에서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미셀 드 몽테뉴는 오랫동안 신장 결석으로 고생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럽다. 요즘에는 약의 도움으로 통증을 완화할 수 있고 돌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 때는 수술로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16세기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었다. 몽테뉴는 권장되는 모든 치료법을 시도했지만 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철학적, 역사적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보다 더 나쁜 운명을 겪은 사람을 떠 올리는 것이 도움이 됐다. 통증이 극에 달했을 때면 그는 그저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렸고, 발작이 지나간 직후의 며칠간 더없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결국 신장 관에 결석이 끼어 감염으로 이어졌고 몽테뉴는 열병에 걸려 1597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요점은 이게 아니다. 몽테뉴의 죽음을 특히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죽음의 여파다.
장례 의식은 순간과 영원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죽으면 더 이상 아무도 당신을 괴롭힐 수 없다. 500년 후나, 내 일이나 똑같이 죽은 사람인 것이다. 생명의 순환 속에서 당신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생태계에 기여하게 된다. 죽은 육신으로 지구에 영양을 공급하고 생명의 긴 역사에서 하나의 조각이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290
일곱 번째 의미
• 좋은 죽음에 대하여
무신론자가 종교를 잘못 이해하는 합리주의자로 보일 때가 있다. 그들에게 종교는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 거짓말의 세계, 유치한 미신, 무의미한 신화일 뿐이다. 그들은 왜곡된 이미지를 사실로 받아들이며 그들 자신도 우월감 에 젖은 선교적 태도를 갖고 있다. 랍비 조나단 색스Jonathan Sacks가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에게 “리처드, 당신이 증오하는 신은 당신이 함께 자란 신입니다"라고 말 한 것처럼 말이다. 색스가 말하는 신은 도킨스가 어린 시절에 접했던 징벌적이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과는 다른 신이 었다.
종교의 핵심은 미신과 폭력이 아니다. 신과 악마, 천사에 관한 이야기의 핵심은 그들이 진짜 있느냐가 아니라, 이 이야기가 그들과 거대한 세상 속 인간의 의미에 대해 나누는 대화라는 사실이다. 신들조차 때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고투한다. 북유럽 신들 중 가장 지혜롭다는 오딘은 깨우 침을 얻기 위해 자신의 눈 하나를 희생했다. 종교는 감사와 용서, 겸손의 마음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작고 보잘것없 는 내가 더 큰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294
일곱 번째 의미
무신론자였던 그레고리 베이트슨과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같은 사상가들도 사랑과 연대, 배려를 낳기 위해 종교와 유사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 방울의 물방울은 주변의 바다 없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종교 안에서 따라야 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더 큰 서사의 일부로 볼 수 있고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종교는 우리가 죽어 없어질 연약한 존재, 찰나의 순간만을 사는 한 톨의 먼지이지만 동시에 커다란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작게는 가족과 친구, 이웃에 관한 이야기지만, 크게 보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나를 엮는 장대한 서사 말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와 진화론의 출발점이다. 이 둘은 공통의 출발점을 가지며 같은 목적을 가지기도 한다. 다만 '왜'로 시작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은 종교뿐이다. 진화론은 '무엇'이나 '어떻게'로 시작하는 질문에만 답을 제공 할 수 있다. 이 지점이 과학이 끝나고 종교가 시작되는 지점 이다.
억압하고 통제하는 행위가 정치적 도구로서의 종교를 통해 정당화될 때가 있다. 그러나 종교는 이를 통해 다른 차 원의 질문을 던진다. 피할 수 없는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세계 곳곳에서 죽음을 기리기 위한 정교한 의식들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순간에 사회를 하나로 묶는 방법이 되어준다.
실 끊기
295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지참금도 마련 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삶이 불평등하고, 신은 냉담하고 무심하다며 한탄하고 살기 쉽다. 하지만 라피에르는 이들이 겪는 작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다. 빈 민가 주민들은 마을 축제, 친절한 이웃과 같은 사소한 것에 감사한다. 하사리 팔은 딸을 시집보낸 뒤 이제 안심하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사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남겨진 사람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인으로 인해 끊어진 실들이 만든 공백 때문이다. 말리의 인류학자이자 시인인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ate Bâ는 '노인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구전 전통은 사람이 죽으면서 지식이 영원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취약 하다. 현자나 이야기꾼이 죽으면 따라서 과거를 현재, 미래와 연결하는 가느다란 실들이 사라진다.
전통이 죽어가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선교사나 개발업자들이 내 조상이 남긴 모든 것이 무가치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최고, 최신의 문물을 제안한다. 내 모든 역사, 부모가 나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을 잊기만 하면 된다면서, 이런 운명에 희생된 문화는 좋은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실 끊기
297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동시에 자기 보호와 이타 주의, 개인주의와 생태주의, 목적 있는 야망과 목적 없는 쾌락,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당신은 세상의 실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정원의 연못, 소파 위의 고양이, 거리 구석의 빵집에 만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자선은 가정에서 시작되겠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작은 세상은 큰 세상을 투영하고 큰 세상에 말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바보가 된다. 공동의 일에는 관심이 없으며, 자신이 일부인 더 큰 이야기를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자신의 작은 정원만 가꾸며 사는 사 람들 말이다.
평생을 쾌락과 재미를 좇아 살았다면, 세상과 작별을 고 하는 일이 고통스럽고 어려울 것이다. 목표가 없고, 쌓이지도 않고, 성취에 이르지도 못하는 활동으로는 삶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더 큰 이야기의 일부로 보는 것이 필 요하다. 당신은 퍼즐의 한 조각이며, 캔버스 위의 한 점이 다. 긴 지금과 큰 여기라는 관점으로 나 자신을 바라본다면 날개 밑에 숨을 불어넣고 앞뒤, 위아래를 모두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실 끊기 303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고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후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아이는 빨리 성장해야 했다.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 생명체의 순환적, 관계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는 죽은 후에도 계 속 살아간다. 이 문단을 읽는 몇 초 동안에도 우리는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며 내뿜었던 산소 분자를 흡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때가 되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고, 겹겹이 시체가 묻힌 묘지 아래 풀이 우거진 언덕에 앉아 공상에 잠길 수도 있어야 한다. 세상은 다채롭고 가능성이 풍부한 멋진 곳이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내려놓아야 할 때도 분명 있다. 세상은 당신이 없어도 잘 돌아가지만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세월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인생은 의미로 가득차 있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작별을 고하고 그동안 쌓아온 실이 성장하고 번성하도록 놓아주어야 하는 시간. 나의 생각을 부처님의 생각과, 우체부를 참나무와, 게를 아귀와,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머와 연결 하는 시간. 그래야만 원이 완성된다.
실 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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